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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코너각자 도생의 정치
BY 민들레2023-06-26 10: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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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기를 앞두고 『노회찬 평전』이 나왔다. 평전을 읽으며 웃음 띤 그의 얼굴을 떠올리고 우리를 웃겼던 그의 말을 다시 듣는다. 장마와 무더위를 견디는 데 큰 힘이 될 듯하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여러 정치인들이 엉뚱한 맥락에서 그 이름을 들먹이고 있다.

먼저 송영길 민주당 전 대표다. “노회찬 형이 계셨다면 지난 대선 때 민주당과 정의당이 단일화를 해 윤석열 검찰독재를 막아내고 연립정부를 구성했을 텐데, 지금 상황을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진다.” 대선 패배의 아쉬움을 토로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뭐 하러 굳이 노회찬을 소환해 ‘평생동지’ 심상정을 비판한단 말인가. 일부러 그랬든 무심코 그랬든, 야비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정의당 쪽이 화를 내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정의당의 대응도 반듯한 건 아니었다. 총선 위성정당 문제와 ‘돈봉투’ 사건을 거론하면서 반격한 대변인 논평은 그렇다 치자. 그러나 류호정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읽기가 민망했다. 요지는 이랬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사건 관련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고 검찰과 싸우고 노회찬을 욕보였다. 개딸은 몰라도 시민들은 같이 분노해주지 않는다.” 다른 정당의 정치인과 지지자들을 조롱하면서 혐오감을 부추기는 행위가 ‘노회찬 정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후보단일화의 이론과 실제

감정싸움을 멈추고 후보 단일화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라. 총선이 열 달 남았다. 3년 9개월이 지나면 또 대선이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분명하게 정리하는 게 좋겠다. 나는 지난 대선으로 민주당과 정의당의 후보 단일화 논의는 완전히 끝났다고 본다. 송영길 전 대표는 그렇지 않은 듯해서 내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말하겠다.

다 아는 것처럼 후보 단일화는 결선투표제가 없는 선거에서 정당과 후보가 경우에 따라 선택할 수도 있는 전략적 행동이다. 이론만 따지면 후보 단일화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둘 이상의 후보가 단일화함으로써 승패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후보가 압도적으로 앞서가면 뒤진 후보들이 단일화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이명박 후보가 압도한 2007년 12월 대선과 문재인 후보의 압승이 분명해 보였던 2017년 5월 대선 때 후보 단일화 논의가 전혀 없었다.

둘째, 둘 이상의 후보들이 서로를 차선으로 여겨야 한다. 그래야 최악의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는 게 의미가 있다. 세 후보가 출마한 선거를 가정하자. 어떤 후보가 나머지 두 후보를 별 차이 없다고 볼 경우 후보 단일화는 할 필요가 없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때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그랬다. 그때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분명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샛강이 있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는 한강이 흐른다.” 권영길 후보는 김대중과 이회창을 별 차이 없는 보수정치인으로 간주했다. 노무현과 이회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대선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와 2022년 대선의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는 모두 두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2002년에는 투표 전날 밤 정몽준이 단일화를 파기했지만 선거 결과가 바뀌지 않았다. 2022년에는 후보단일화가 선거 결과를 바꾸었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나는 지난 대선의 후보 단일화 관련 실제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우선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직후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후보 단일화를 제안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심상정 후보가 윤석열을 최악으로 이재명을 차선으로 여겼는지 여부도 분명하지 않으며, 그가 당시 선거 판세를 어떻게 읽고 있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추측이지만, 나는 후보 단일화의 조건 둘 가운데 어느 것도 충족되지 않았다고 본다. 심상정 후보는 윤석열의 당선을 반드시 막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다. 또 이재명과 단일화를 해도 윤석열을 이기지 못하리라고 판단했다. 안철수 사퇴 이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이 평균 5퍼센트 안팎의 차이로 앞서 있었으니 자체 여론조사를 하지 못한 정의당 인사들은 선거판세가 그토록 박빙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수 있다. 심 후보가 이재명을 차선으로 간주했지만 윤석열의 압도적 우세가 굳어졌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였든, 완주했다는 이유로 심상정을 비난할 합당한 이유는 없다. 완주하든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하든, 모두 심 후보의 권리다. 그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했을 따름이다. 윤석열과 이재명이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세계관과 철학이 다르면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미련을 버려야 할 때

송영길 대표는 괜한 말을 했다. 돌이켜보라. 지난 대선 결과는 2010년 6월 서울시장 선거 결과와 판박이였다. 한명숙 후보가 오세훈 후보에게 ‘깻잎 한 장’ 차이로 패배한 그 선거 직후 노회찬 후보는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작년 3월에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심상정 후보를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말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내가 듣고 본 바로는 그랬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왜 심상정을 비난하지 않았을까? 완주든 단일화든,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가 선택할 문제라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정의당으로 이어진 진보정당에 대한 연민과 연대의식과 미안함을 털어버렸다.

민주당 지지자들 중 진보성향이 강한 사람들을 ‘민주당 좌파’라고 하자. 민주당 좌파는 진보정당이 정의감 강한 사람들이 모여 옳은 일을 하는 정당이라고 생각했다. 파쇼정당의 후신인 ‘국힘’계열 정당의 권력 장악을 저지하려고 곱든 밉든 민주당에 힘을 모아주었다. 진보정당에 표를 주지 못해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민주당이 크게 앞서고 있어서 여유가 있을 때는 비례 표를 진보정당에 주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정당 지지자 가운데 현실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민주당 소속 지역구 후보에게 표를 주었다. 진보정당 소속 후보가 있는 선거구에서도 ‘국힘’ 계열 후보의 당선을 막으려고 그렇게 했다. 이러한 ‘전략적 투표행위’ 때문에 민주노동당에서 정의당까지 진보정당 지역구 후보들은 평소 여론조사 정당 지지율보다 적은 표를 받았고 비례 후보들은 지지율보다 많은 표를 받곤 했다.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 지지자의 일부가 앞으로도 ‘전략적 투표’를 할지 여부는 모르겠다. 그러나 민주당 좌파는 ‘전략적 투표’를 그만둘 것으로 나는 전망한다. 그들은 진보정당에 대해 냉정해졌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각자의 길을 가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타산이 맞으면 원내에서 연대 협력할 수도 있는 정당으로 본다. 심상정 후보를 비난하지 않은 것은 정의당에 대해서 특별한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아도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연대해서 싸워야 한다”고 한 노회찬의 말을 이제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래서 노회찬을 소환해 심상정을 비난한 송영길의 발언에도 크게 공감하지 않는다.

나는 민주당 좌파의 진보정당에 대한 정서적 유대감이 지난 대선에서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데이터로 입증하지 못했으니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내년 총선 데이터는 이 가설이 타당한지 여부를 보여줄 것이다. 그들은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는 경우에도 정의당에 비례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랜 기간 민주당 좌파와 진보정당 현실파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그래서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후보 단일화 따위는 마음에서 지우시라. 혼자 힘으로 이기려고 노력하시라. 패배하면 더 지혜롭게 치열하게 다음 선거 승리를 준비하시라.

정의당를 비롯한 진보정당 정치인들에게는 책임윤리에 대한 막스 베버의 말을 들려 드리고 싶다. “정치인은 자신의 행위가 가져올 예측 가능한 범위 안의 결과에 대해 책임의식을 지녀야 한다.” 나는 지난 대선 결과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의 결과’였다고 본다. 그러나 심상정은 그에 대해 어떤 책임의식도 드러낸 적이 없다. 내가 잘못 알고 있다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결론을 요약한다. 1987년 6월민주항쟁 이후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게 이어져 왔던 중도-진보 연합 정치는 토대가 완전히 무너졌다. 우리의 정당정치는 얼마나 지속될지 모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국면에 진입했다. 이런 정치는 처음이라서, 그 끝에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니, 부디 각자 잘 살아가기를!

출처 : 유시민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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