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1931~2011) 작가의 1975년 단편소설에 ‘도둑맞은 가난’이 있다. 가난을 도둑맞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가난이 사라졌다면 차라리 잘 된 일 아닌가?
부자의 ‘가난 체험 활동’에 상처받은 박완서 소설의 여주인공
가난을 도둑맞은 주인공은 공장에서 일하는 앳된 여성이다. 원래 중산층이었는데 아버지의 실직과 허영심 많은 엄마 탓에 집안이 몰락했다. 차라리 죽기보다 빈민촌 가난의 냄새를 더 싫어한 어머니가 느닷없이 아버지와 오빠랑 동반자살 하는 바람에 고아가 됐다.
‘여공’이 되어 밑바닥 생활을 하는 주인공은 “그들이 죽기를 무릅쓰고 거부한 가난을 내가 지금 얼마나 친근하게 동반하고 있나에 나는 뭉클하니 뜨거운 쾌감을 느꼈다.” 이렇게 가난한 삶을 기꺼이 사랑하며 성실히 살던 주인공은 우연히 “5원짜리 풀빵 구루마 앞에서” 남성 상훈을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연탄이나 월세 등 돈을 아낄 수 있어 좋지만, 실은 상훈에게도 끌렸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훈이 먼저 사랑을 고백하길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상훈이 아픈 동료를 돕는답시고 그간 둘이서 동거하며 함께 모은 저금을 다 써버렸다 하는 게 아닌가? 주인공이 버럭 화를 내자 상훈이 사라진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면서 속이 타고 분해서 눈물이 난다. 걱정과 울화가 범벅이다. 한참 뒤 상훈이 돌아왔는데, 멋진 옷을 입고 말끔해졌다.
무슨 일인가 물었다. 상훈은 자기가 원래 부잣집 아들이고 대학생인데, 아버지가 좀 별나 방학 때 고생 좀 하며 돈 귀한 줄 알고 오라 해서 공장에 취업한 것이라 했다. 이 고백은 주인공에게 멘붕을 주었다. 이 배신감!
절망과 수치심으로 변한 가난 초월의 소명감
바로 그 때 주인공 여성의 심장엔 ‘가난을 도둑맞았다!’는 느낌이 치밀었다. “가난을 정면으로 억척스럽게 사는 사람들의 이런 특이한 발랄함-가난의 냄새에 기꺼이 길들여지는 것-을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치를 떨며 경멸했던가.” 그래서 주인공에겐, 가난하고 힘들지만 악착같이 살아내 마침내 가난을 초월하고야 말겠다던 소명감 같은 게 있었다. 하지만 부자들의 장난질 때문에 그 소명감이 갑자기 절망감과 수치심으로 변했다. “내 가난을, 내 가난의 의미를 무슨 수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설사 부잣집 상훈의 아버지가 깊은 뜻을 가졌다 해도, 부자의 “가난 체험 활동”에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건 절대 용서 불가였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곰곰 생각해보니 주인공이 맨 처음 상훈을 풀빵 구루마에서 봤을 때, 그가 풀빵을 손으로 잡지 않고 “어디서 났는지 오톨도톨한 꽃무늬가 있는 하얀 종이 냅킨으로 싸서 집어먹던” 것부터 꼴사나웠다. “다 먹고 나서는 그 냅킨으로 입 언저리를 자못 점잖게 꾹꾹 눌러 닦는” 것도 꼴불견이었다. “같은 5원짜리 풀빵을 먹으면서 그까짓 종이 한 장으로 이곳에서 풀빵을 먹고 있는 배고프고 피곤한 저녁나절의 직공들 사이에서 우월감 같은 걸 누리고 있는 게 몹시 꼴사나워” 보일 때부터 주인공이 알아 봤어야 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상훈과 내가 근본부터 다르다는 걸! “얼마나 떳떳하고 용감하게 내 가난을 지켰는지 스스로 뽐내던” 주인공, “내 방에서 기적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매일 방을 비워야 했던” 주인공, 그 주인공에게 도대체 부자가 ‘가난을 체험 삼아 살아 본다’는 게 말인가 방군가? 그래서 가난을 도둑맞았다!
자본-권력의 보수동맹, 여론조사 조작에 도둑맞은 민주주의
그런데 요즘 나는 그와 비슷하게 ‘도둑맞은 민주주의’란 느낌을 너무도 강렬하게, 그것도 거의 매일 반복 경험한다. 곰곰 따져 보니, 민주주의가 도둑맞아온 역사가 꽤 길다.
첫째, 1981년에 대학생이 된 뒤로 나는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자는 대의에 공감해 피라미지만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3학년 때는 단과대 학생 대표를 맡아 한편으로는 독재 세력들과, 다른 편으로는 깡보수 교수들과 싸웠다. 옥살이는 안 했지만 군경 테러에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매일 긴장감 속에 살았다. 군사독재 종식을 내세운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고 뒤를 이어 김대중,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나마 민주주의가 쟁취됐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새 자본이 그 민주주의를 새로운 형태로 포섭했다. 우리가 민주주의라 믿은 것은 단지 ‘자본주의의 권위주의적 형태’가 ‘자본주의의 자유주의적 형태’로 바뀐 것에 불과했다.
둘째, 흔히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선 사람만 바꿀 일이 아니라 ‘시스템’을 제대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대통령 직선제 헌법도 고치고 노동법도 개정하고 헌법재판소나 방통위원회, 특별검사제, 상설특검,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부패방지위), 공수처도 만들었다. 그런데 민주주의 고양을 위한 이 제도나 시스템을 교묘히 우회하거나 쓸모없게 만드는 반민주 세력들이 있다. 자본과 권력 주도의 보수동맹이 문제다.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내부자들>에도 나오듯, ‘재벌-금융-언론-정치-검찰-법원-조폭’의 연합체가 카르텔을 만든다. 심지어 과거 박근혜-최순실 사태나 최근 김건희-명태균 사태에서 보듯, 비선 실세 내지 문고리 O인방 같은 어둠의 세력들이 농단을 한다. 이들이 민주주의 시스템을 마치 소리 없는 지뢰로 파괴하듯 허물고 있다.
셋째, 지자체 선거, 총선, 보선,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여태 나는 조직적 댓글부대나 개표 부정이 문제라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충격적으로 드러난 바, 선거 국면에서 유권자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실시된 ‘여론조사’ 자체가 멋대로 조작되었다!
‘엿장수 맘대로’ 조작된 여론조사는 동요하는 표심에 영향을 줘 특정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또 그 보상으로 특정인 공천이 된 것도 폭로됐다. ‘여사’의 입김은 넓고도 세다.
쏟아지는 ‘도둑맞은 대선’의 증거들
10월 국정감사에서 양심적 검사 출신의 박은정 의원은 “공천헌금-대가성 여론조사가 사실이면, 뇌물죄 중 가장 죄질 나쁜, 수뢰 후 부정 처사 죄”가 성립한다고 역설했다. 박 의원은 “명태균을 대선 경선 이후 만난 적 없다는 윤 대통령의 해명과 달리 명태균 ‘박사’발 국정개입 의혹들로, 지난 대선이 무효화 될 수도 있는 ‘도둑맞은 대선’의 증거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개탄했다. 게다가 “대선 당일에도 핵심 참모진들과 ‘명태균 보고서’가 공유됐고, 이를 토대로 전략회의도 했다”는 내부고발(신용한 전 서원대 교수)까지 나왔다.
초등생 아이들도 익히 들었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뒤엔 이른바 ‘선수’들이 작전세력이 되어 열심히 뛰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도 특정 회사의 주가를 풍선처럼 부풀게 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뛰었다. 실속이 거의 없는, 체코 원전 수출 계약이나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사업 약속 같은 걸 받아내려 한 것이 그 증거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원전 부활을 외쳤는데, 원전 사업이 국내외에서 왕성하면 원전 부품 관련 기업인 ‘우리기술(주)’ 주가가 급등할 것이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끝나면 복구 및 재건 사업에 ‘삼부토건(주)’ 같은 회사의 주가가 급등할 것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기업들의 주가 역시 치솟을 것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관련된 선수들이나 작전세력, 그리고 ‘여사’를 포함한 쩐주들이 여기에도 다 걸쳐 있었다. 불법 투자자문사인 블랙펄인베스트먼트(BP) 대표 이종호로 상징되는 작전세력들은 도이치모터스, 삼부토건, 쌍방울 주가조작에 종횡으로 연결돼 있다. 그런 인연들이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진실도 교묘히 가렸다. (희토류 사업과 관련해) 북한과 접촉을 했던 ‘쌍방울’의 경우, 극히 고약하게도 자기들의 주가조작 사실을 숨기려고 오히려 이재명 민주당 대표(당시 경기도지사)에게 뇌물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공작을 강행하다가 오지게 들킨 상태다.
가족 위한 비즈니스에 열중하는 검사 출신 대통령
이렇게 대통령 부부는 ‘작전세력’들과 사실상의 표리관계를 이루면서 ‘비즈니스’를 위해 수 억, 수십 억 혈세를 쓰면서 지구촌을 여행한다.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찰이 아닌, ‘비즈니스 맨’이 된 검찰 출신 대통령! 그것도 대한민국 아닌, 가족을 위한 비즈니스! 이게 자본주의요, 현 한국 자본주의 정치의 실상이다.
약 50년 전 박완서 작가의 소설 속 여성이 ‘도둑맞은 가난’을 치욕적으로 느꼈듯, 오늘의 우리 역시 ‘도둑맞은 민주’를 뼈저리게 체험한다. 이 사태, 이 배신감을 어찌해야 할까?
그런데, 흥미롭게도 1975년 1인당 국민소득이 약 600달러였고 2023년엔 3만 달러를 훌쩍 넘었으니 50년 만에 평균 50배 이상 잘 살게 되었다. 물론,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각하다. 아직도 쪼들리게 어려운 이가 많지만 평균 수준은 많이 올랐다. 50년 전 시내버스비가 15원이었는데, 지금은 1500원 가까우니 단순 물가로 100배 뛰었다. 이제 예전의 그런 가난은 민속박물관에서나 볼까 좀체 찾기 어렵다. 어렵다고들 하지만,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면 사람이 많다. 심지어 ‘명품’을 사려고 새벽부터 몰려들기도 한단다.
잘 생각해 보니, 오히려 당시 내가 자라던 가난한 달동네에서는 수돗물을 하루에 한두 시간씩만 받았고, 세숫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이웃사촌 개념이 살아 있어서 부침개 하나를 부쳐도 이웃과 오순도순 나눠 먹었다. 봄, 가을 농번기엔 학교에서 대대적으로 농촌 봉사활동을 나갔다. 옆집에 대소사, 경조사가 생기면 서로 나서서 일손을 거들었다. 당시만 해도 두레나 품앗이 문화가 살아 있었다. ‘똥물 튀는’ 변소조차 그 똥오줌을 밭에 거름으로 씀으로써 수질오염은커녕 생태순환에 기여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투고 와도 어른들이 변호사까지 붙여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가난 조금만 되찾아도 우리 삶과 민주주의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후위기와 6차 대멸종이 경고되는 현 시점에서 불과 50년 전만 돌아봐도, 오히려 저 고단하고 가난했던 삶의 방식을 조금만 고치면 지구촌을 위해 지속 가능한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싶다. 소설 속 주인공이 “그들은 겉으론 가난을 경멸하는 척 했지만 실상은 두려워했다는 걸 나는 안다.”고 했을 때 어쩌면 ‘그들’이 바로 우리가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도 우리는 도시화, 산업화, 세계화, 상업화의 과정, 즉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역설적이게도 가난도 도둑맞고 절약도 도둑맞고 마을도 도둑맞고 자연도 도둑맞았다. 그리고 이제는 대명천지에 선거도, 민주도, 혈세도, 행복도 도둑맞고 있다. 가난을 도둑맞게 된 그 흐름들(부자 중독증, 출세 중독증) 탓에 이제는 민주까지 도둑맞고 있는지 모른다. 역으로, ‘도둑맞은 가난’을 우리가 얼마나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지에 따라 ‘도둑맞은 민주’ 역시 딱 그만큼 회복될 것 같다는 특별한 느낌도 든다.
그러기 위해선 민주주의를 두려워해선 안 되듯 가난을 두려워 않아야 한다. 궁핍은 면하되, 검소하게 살며 서로 나누고 보살피며 사는 게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피터 모린(1877~1949)의 역설처럼, “아무도 부자가 되려 하지 않는다면 모두 부자가 될 것이요, 모두 가난해지려 하면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을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