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3일. 미 하원은 의장 사퇴동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찬성 216 대 반대 210.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공화당)이 축출됐다. 고작 9개월 재임했다. 표결을 통해 의장이 쫓겨난 미국 정치사 최초의 사건이다.
그의 사퇴를 주도한 집단은 8명의 같은 당—민주당이 아니라—강경보수파 의원들. 이들은 정부 부채 만기 연장, 재정지출 일부 감축을 핵심으로 하는 바이든 정부의 예산안에 타협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부 폐쇄까지도 감수했어야 했는데 양보한 그는 의장 자격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애초 매카시는 작년 1월 의장 선거에서 강경파 의원들의 지원을 얻기 위해 양보를 거듭했다. 그중 하나가 의장 사퇴 관련 요건을 완화한 것. 결국, 그것이 제 명을 재촉했다.
이 사태와 관련, 온라인 매체 폴리티코는 공화당을 진단하는 정치학자 14명의 인터뷰를 실었다. 인터뷰를 요약하면, '미국 정치에서 망가진 곳을 찾자면? 그건 공화당! 망가진 이유는? 당이 극단화됐기 때문!'이다.
미 공화당 '극우 색채'…프랑스 RN 넘어서
'당이 극단화됐다' 맞는 말일까? 여기 하나의 도표(뉴욕타임스 2019년 6월 26일)를 보자. 각 정당의 정책자료와 공약집을 기준으로 미국, 캐나다, 유럽 정당들의 이념적 좌표를 비교한 것이다.
가운데 선을 기준으로 오른쪽 중앙에 있는 붉은 원이 공화당이다. 뉴욕타임스는 공화당은 영국이나 캐나다 보수당보다 훨씬 우파인 것은 물론, 우리나라에선 극우로 알려진 프랑스의 국민연합(RN. 이전의 국민전선)보다도 오른쪽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극우라는 뜻이다.(참고로 민주당은 가운데 선 기준 바로 왼쪽의 푸른 원이다. 중도좌파 정도로 분류돼 있다.)
극우란 무엇일까?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에 따르면, '극단적으로 보수주의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인 성향, 또는 그런 성향의 사람이나 세력'이다. 각 나라에 따라 구체적 양상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사고방식의 차원에서는 배타주의와 권위주의, 행태의 차원에서는 태도와 언어, 행동에서 극단적인 개인과 집단을 가리킨다. 여기서 배타주의는 인종/성차별, 반공주의, 애국/국수주의 등을, 권위주의는 개인숭배, 가부장(남성)주의, 집단주의 등을 말한다.
그런데 사상도 사상이지만, 현실의 마당에서 극우를 극우답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행태다. 극우적 개인이나 집단은 위협적 태도와 적대적 언어, 심지어는 폭력적 행동으로 자신들의 뜻을 표출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이미 배타주의와 권위주의라는 말 자체에 위협과 적대감, 폭력이 내재해 있다. 흔히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하지만, 극단적 이데올로기는—극우든 극좌든—행동과 따로 존재하거나 작동하지 않는다.
오바마 취임 당일 "무조건 반대" 막가파
이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가 있다. 2009년 1월 21일.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당일 저녁이다. 워싱턴 DC의 한 레스토랑에서, 전 하원의장 깅그리치를 포함해 15명 정도의 공화당 상·하원 의원과 당 전략팀 관계자들이 함께 모였다. 회동의 주제는 오바마 정책의 저지를 위한 전술·전략 수립. 특히, 2008년 터진 금융공황 사태 수습책으로 오바마가 제시한 대형 재정지출 예산을 어떻게 막아낼까에 초점을 맞췄다.
이들은 이날 모임에서 이를 저지하는 것은 물론, 향후 오바마 정부의 정책은 무엇이든 반대하기로 결의했다. 이유는 그렇게 해야 2010년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다수당의 지위는 물론, 그 2년 후 백악관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자리를 파하면서 깅그리치는 참석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 오늘을 잊지 마시오!'
상대 당 대통령의 취임 첫날부터 그의 정책을 가로막는 전술을 짜고 재선 저지의 결의를 다지는 정치조직, 이렇다 할 대안도 없이 정부 폐쇄를 밀고 나가지 못했다며 같은 당 소속 의장의 축출을 주도하는 정치조직. 이런 막가파 행태를 보이는 정당이 정상일 수는 없다.
실제로 공화당은 오바마 행정부 내내 '무조건 저지와 반대' 태도를 견지했다. 오바마는 어느 연설 자리에서 "민주당이 하늘이 파랗다고 말하면 공화당은 '아니, 하늘은 노란색이야'라고 말한다"는 웃픈 농담을 던진 적도 있었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이코노미스트지는 2010년 1월 28일, 그런 모습의 미국 공화당을 '무조건 반대당(party of no)'이라고 풍자한 삽화를 실었다(코끼리는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 삽화는 다수의 강경파(conservatives)가 소수의 온건파(moderates)를 밀어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왜 이렇게? 극우화의 분기점은 1980년
지난 7월 10일의 칼럼(미국정치의 적 - 보수에서 극우로 변한 공화당 ①)에서도 지적했듯, 매카시즘 같은 극우적 요소도 품고 있지만, 1970년대까지 공화당의 주류는 아니었다. 그러다 1964년 골드워터 선거에서 당의 한 부분으로 편입됐고, 이후 1980년대를 전후해, 변방에 머무르던 극단적 요소들(예: 반뉴딜주의자, 반연방정부주의자, 반/멸공주의자, 복음주의 복음파 기독교도 등)이 당의 주류로 자리 잡는다. 뉴딜 체제가 무너지고 신보수(네오콘)-신자유주의 체제(이하 신보수-신자유 체제)가 들어선 것이 가장 큰 배경이다,
신보수-신자유주의 체제가 올라서기 전, 곧 1970년대까지의 뉴딜 시기, 미국에는 '리버럴 컨센서스'라고 부르는 사고와 행동의 기준이 정치·경제·사회 각 영역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즉, 민주주의와 평등의 가치 존중, 공동체를 중시하는 규범, 개혁 과제의 실천에 대한 폭넓은 동의가 있었다는 뜻이다. 물론 성격과 성과를 두고 논쟁(예: 남부는 이런 기준과 무관한 지역이라는 것)은 여전하지만, '리버럴 컨센서스'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사고와 행동을 제어하는 규율로 작동했다. 그것이 1960년대 민권법—1964년 평등법과 1965년 참정권법—을 양당의 적극적 협조로 제정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1980년대 보수 우위 체제가 들어서면서 '컨센서스'는 퇴화했다. 극우 대중주의 정치인 레이건의 당선은 변화의 한 상징이다. 달라진 권력과 정치환경에서 당 내부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강경보수 세력이 크게 성장한다. 특히 대중조직 차원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의 정치 활동, 백인종주의 집단의 공개적·위협적 활동, 그리고 극우 미디어의 등장과 확산 등이 대표적 사례다. 공화당은 이들을 이용하거나 상호협조하면서 집권-다수당을 목표로 권력 획득에 매진한다. 당과 극우 집단의 물리적·화학적 결합이 시작된 것이다.
미 공화당의 뼈대, 복음파 기독교와 티파티
1979년 대선을 다섯 달 정도 남겨 둔 6월, J. 팰웰, P. 로벗슨 같은 복음파 개신교 목사들은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라는 정치단체를 조직한다. 오래전부터 '뉴라이트' 조직에 관여했던 인사들이다. 이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목사가 아니라 정치인이라고 비난해왔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이 정치에 뛰어들었다. "정치에 개입하는 다른 기독교도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구실을 댔다.
이들이 내세운 핵심 주장은 세 가지다. 1, 개혁파 교회는 하나님의 적이자 국가의 적이다 2. 성 소수자 운동은 악마에 이끌린 변태 행위다 3. 복지제도는 미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든다. 가톨릭 계열의 한 종교 매체는 이 단체를 '도덕적 파시즘 조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레이건 선거본부와 후보 레이건은 이들의 메시지를 앞장서 제창했고, 도덕적 다수는 레이건 지지표로 지원했다.
2009년 2월, 오바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대중의 반대 운동에 직면했다. 금융공황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재정지출 정책을 반대하는 이른바 티파티 운동. 채 열흘 만에 티파티 전국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S. 페일린이 주도하고 극우단체 '미국번영재단'이 후원했다. 이들은 2010년 중간선거를 맞아, 예비선거에서부터 극우성향의 인물들을 지원, 상원과 하원에 대거 당선시켰다. 티파티 초선 의원들은 비타협적 강경보수 노선을 내세웠다.
이들은 오바마 정부와 맞서는 최일선 전투병으로 연방정부 폐쇄도 마다하지 않았다. '티파티 의원들은 법이 아니라 십자군전쟁하러(crusades) 정치판에 왔다.' 당시 하원의장이던 공화당 뵈이너 의원은 훗날 자서전에서 그렇게 개탄했다. 2016년, 이들은 트럼프 선거캠프로 향했다. 여론조사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는 대선후보로 지명됐고 당선됐다.
복음파 기독교도는 지금도 공화당 지지층의 가장 굳건한 토대고, 티파티가 보여준 행태는 공화당이 벌이는 정치행태의 모범적 선례다.
극단적 정치의 목적과 끝은 정치의 실종
정치철학자 아른트는 거짓말의 목적은 진실을 부정하기보다 실종시키는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극우의 정치행태도 마찬가지다. 의도적 교착상태를 조성해 정치를 실종시킨다. 정치는 이어지지만 그건 정당 간에, 나아가 지지층 간에 적대적 분열을 조성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런 사태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월 20일, 온라인 매체 '복스(Vox, 목소리라는 뜻)'는 올해 대선 후폭풍을 우려하는 여론조사 내용을 기사로 실었다. 그중 가장 주목할 것은 공화당 지지자 네 명 중 한 명이 '트럼프가 낙선할 경우, 부정선거로 선포하고 무슨 방법을 쓰든 대통령직을 차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기사에는 또 2020년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했던 트럼프에게 잘못이 없다, 바이든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내용도 실려있다.
한편, 2020년에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낙선할 경우, 공화당 지지자의 44%, 민주당 41%는 국가를 분리해야—연방 탈퇴 나아가 연방의 해체를 의미—한다는 조사 결과까지 있었다. 다음 해 조사에서 그 수치는 남부 공화당 지지층의 경우 무려 66%까지 올라갔다.
물론 선거 불복과 그에 이은 내전 같은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작다. 중요한 것은 극우로 인한 미국의 정치적·사회적 분열의 틈이 그만큼 깊고, 분열을 극복할 정치가 실종상태라는 점이다. 시비와 거부, 반대가 일상이 된 정치판에서 대통령은 자기 권한(예; 행정명령)에 더 의존하고, 의회는 포퓰리즘 정책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올해의 대선과 총선이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책 대결이 미미하거나, 중국을 적으로 만드는 경제전쟁(?) 법안이 별다른 논의 없이 처리—9월에만 무려 25개의 중국 제재 법안 의회 통과—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극우로 변한 공화당은 이런 점에서 미국 정치의 적이다. 그러면 민주당은 책임이 없을까? 공화당은 극단적 정치 이외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민주당은 그에 맞서는 분명한 대안을 제시할 역량도 의지도 부족하다. 대신 이들은 미국의 분열, 나아가 세계적 위기를 오히려 조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