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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코너주술에 빠진 사람들
BY 민들레2024-07-07 22: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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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열린공감TV에서 “굥짜장 썰뎐 24화: 죽은자의 영혼을 제물로”라는 동영상을 보고 깊은 충격에 빠졌다. 동영상이 공개된 지 꽤 되었지만 그것을 입에 올리는 지식인은 어디에도 없다. 아마도 살아있는 권력을 다룬 것이라 두려웠거나 아니면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영적 세계를 다룬 것이라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유튜브 방송의 선정성 여부를 떠나 그 동영상을 보고 나니 그동안 의문투성이였던 대통령 부부의 행적이 일목요연하게 이해되었다. 갖은 핍박 속에서 동영상을 만든 열린공감TV의 취재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을 희생시켜 나의 행복을 추구한다”

후보 시절 손바닥에 王자를 쓰고 나와 팔을 휘두른 일, 특정 숫자에 집착하는 일,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한 일,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에 초대받아 영국까지 가서는 문상을 거른 일, 살아있는 소의 껍질을 벗겨 제사를 지내는 장소에 연등을 단 일, 수많은 사람이 죽어간 장소에 지은 아파트에 들어가 사는 일 등등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이 모조리 이해되었다.

그 동영상에 따르면, 그러한 행위의 배경에 주술이 있는데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토착 주술이 아니라 일본에서 건너온 주술이라는 것이다. 하긴 이 땅에서 태어나 70년을 살았어도 듣도 보도 못했던 일이라 의아하긴 했었다. 우리나라 주술은 괜찮고 일본 주술은 나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저들이 맹신하는 일본주술에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 있어서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남을 희생시켜 나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성공 배경을 생각하면 이런 주술에 빠져있는 것이 백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주술이란 초자연적 힘을 빌어 내가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할 때 사용하는 술수를 말한다. 주술은 나라와 지역마다 매우 다양하게 분포하는데 가장 공통적인 것은 신(귀신)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면서 소원을 빌거나 액운을 면케 해달라고 비는 것이다. 구약성서에도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내용이 나오고 우리 고전 소설 심청에도 성난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인신공양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인신공양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은 멕시코 지역의 아즈텍인들이 신전에 바친 인신공양이었다.

그러나 생명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해지면서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산 제물을 바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우리나라도 제사 때 삶은 돼지머리를 올리는 것이 그나마 남아 있는 희생제물의 흔적이다. 이런 판국에 살아있는 소의 껍질을 벗겨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엽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전통에 이런 사례가 있다는 얘기는 들은 바가 없고 일본 민속에 소와 말을 제물로 바쳤다는 기록은 발견된다. 이들은 인간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되도록 끔찍하게 죽여서 제물로 바치는 것이 더 효험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억울하고 고통스럽게 죽은 영혼들이 산 자의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고지에 지은 아파트에 들어가 산다든지, 혹은 조선시대 때 공동묘지였던 용산에 대통령실을 만들어 들어간다든지 하는 것이 그렇다. 우리 풍수에서는 사람이 죽은 터에 들어가 사는 것은 일종의 금기사항인데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일본은 워낙에 전란이 많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사람이 많이 죽은 곳에 성이나 사찰을 짓는 일이 많다. 죽은 자의 영혼이 자기를 보호해 준다고 믿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부모가 죽으면 유골분이나 위패를 집안에 모시는 것도 비슷한 논리이다.

대통령 부부가 일본식 주술에 빠져 있어서인지 주변에 ‘친일파’들이 꼬여든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고위직 명단을 보면 검사 출신 아니면 ‘친일파’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통령 부부의 스승이란 작자는 아예 대놓고 일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이들의 꿈은 어쩌면 일본과 한국이 하나의 나라가 되어 자신들만은 여전히 지배자의 위치에서 자손 대대로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들은 일제 강점기 이래 지금까지 지배자 위치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하지만 1980년대 이래 민주화 운동이 거세어지고 심지어 운동의 주역들이 정권을 잡는 일마저 벌어지자 심기일전하여 일본 주술에 빠진 주태백을 대통령 자리에 앉히고 만 것은 아닌가.

 
대통령이 된 뒤 윤석열 부부가 청와대를 거부하고 용산으로 간 이유 역시 주술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윤석열이 용산행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이유에는 주술 외에 스승 천공과 주한 미군사령부의 존재가 있다. 정치 문외한이라는 그가 대통령으로서 의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비빌 언덕이다. 주술사인 스승과 영원한 동맹인 주한 미군사령부 곁에 있는 것보다 더 안전한 곳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이 그가 선택한 용산이란 땅의 지정학적 내력이다. 용산은 역사 이래로 외국 군대가 이 땅을 침략했을 적에 수도 서울을 장악하고 반도 전체를 감시하기 위한 주둔지였다. 4대문 밖이라 민초들과 섞일 염려도 없고, 코앞에 한강이 있어 배를 타고 어디든 갈 수가 있다. 13세기 말에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한반도에 들어왔을 때 원나라 군대의 주둔지였으며, 임오군란 때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 군대가 같은 곳에 주둔했으며,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 군대가 바로 그 자리에 들어섰다가, 일본 패망 후 미군이 대신 들어서서 지금까지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곳이다. 말하자면 외국군이 한반도를 침략하면 반드시 장악해야 할 지정학적 적소였던 곳이다. 일제는 그곳에 사령부와 병참기지 및 조선총독부 관사를 두었다.

나는 한미연합사가 창설되던 해에 그곳에서 군생활을 했다. 매일 남의 나라 깃발이 내걸린 연병장을 오가며 식민지의 비애를 곱씹곤 했다. 그날, 한미연합사 창설 당일 나는 수백 개의 별들이 모여있는 행사장 외곽에서 권총을 차고 경호업무를 해야 했다. 윤석열은 이런 역사를 알고 갔을까? 그는 왕이 되기 위해 용산으로 갔지만 실은 점령군이나 식민지 본국의 총독으로 그 자리를 찾아간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술과 장소와 인물이 어우러져 블랙코미디 같은 정치극이 벌어지고 있다. (주: 한미연합사는 2022년 11월 15일 평택 미군기지로 이전 완료했다. 그날 기념행사 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전 장병은 라캐머라 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팀(One Team)이 되어 한미동맹의 심장인 연합사가 더욱 활기차게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길 당부드린다." 사령부가 이전했다고 해서 미군이 아주 철수한 것은 아니다. 사령부의 핵심 인력이 여전히 용산에 남아 있을 것이고, 주한 미대사관도 가까운 장래에 그 언저리로 이사 올 계획이다.)

 
경제성장이란 또 다른 주술

주술에 빠진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국민청원이 2주도 채 안 되어 100만 명을 넘었다. 기록적인 ‘수치’다. 하지만 별다른 상황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정상적인 정치인이라면 제정신이 아닐텐데 윤석열은 무척 태평스럽게 보인다. 이미 이런 일을 예상하고 주술적으로 대처해놨기 때문이다. 스승이, 오방신이 지켜주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으랴!

그러나 그 주술적 대처가 과연 효과가 있을지 어떨지를 떠나 탄핵을 바라보는 국민 전체가 대통령 부부보다 더 심각한 주술에 빠져있는 것이 진짜 문제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경제성장’이라는 주술이다. 경제성장 주술에 한 번 빠지면 백이면 백 출구를 찾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윤 정권이 당선 이후 줄기차게 외치는 ‘부자 감세’와 ‘규제 혁파’는 경제성장 주술에 빠진 이들을 달래는 조처이다.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운영하는 이들은 법적으로 치명적 하자가 없이 경제성장 주술을 적당히 읊조리는 것만으로 정권 유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면 어찌하여 경제성장에 대한 믿음이 주술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제성장이라는 신념은 주술의 요건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 주술은 주술사와 신자, 주문(呪文), 주구(呪具), 주술 행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술사는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기업체 총수이고 신자는 고객들이다. 이들이 온갖 광고를 통해 주문(呪文)을 외우면 고객들은 해당 상품을 주문(注文)한다. 주구는 상품 유통과 관련된 모든 설비와 장치를 말하며, 주술 행위는 판매 촉진을 위한 각종 이벤트나 판매행위를 뜻한다. 이 과정이 원활히 진행되면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이는 곧 고객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주술의 내용이다.

경제성장 주술이 현대인을 사로잡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주술에도 계보와 역사가 있다. 이 주술은 처음부터 주술로 개발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엔 특정 계급의 사람들이 자신의 상업활동을 가로막는 구체제를 타파하기 위해 갖은 무도한 짓을 벌이다가 점차 힘을 얻게 되자, 용하다는 주술사들이 사방에서 나타나 정교한 신념체계와 주술행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대표적 경제학자인 아담 스미스는 ‘이기심’이야말로 인간의 행복 실현을 위해 신(神)이 내려준 국부의 원동력이라고 갈파함으로써 단순한 성장 이론을 주술로 ‘격상’시켰다. 사람들은 하찮아 보이는 개인의 상업활동이 주문만 잘 외면 어마어마한 부를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야말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모은 재산으로 권력까지 장악한 다음 국경을 넘어 무자비한 부의 사냥에 나섰다. 이 주술의 특징은 “나의 이익만 잘 챙기면 보이지 않는 신(神)이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란 믿음이다. 가난에 지친 민초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당장에 사람들은 오랜 세월 자신의 행동을 옭죄고 있던 종교를 걷어차고 이 새로운 주술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주술은 종교처럼 복잡한 의식이나 규정, 교리, 사제 계급 같은 것이 없다. 좋아하는 주술사의 말만 믿고 자기 이익에 충실하면 그만이다.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주술은 거의 기성 종교를 대체할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의 경우 주술사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등은 죽어서 신이 되었고 이들을 따르는 신자들이 한국 보수정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민주화운동 경력을 내세우는 민주당이 아무리 다수 의석을 차지해도 한국사회의 보수적 기조는 변하지 않는다. 주술은 형성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사회에 대한 윤리나 도덕 같은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사는 게 장땡이다. 이 주술의 핵심 가치는 ‘자유’인 바 자유의 다양한 측면은 다 무시하고 오로지 ‘돈 버는 자유’만을 추구한다. 그 결과 부자는 많아졌지만 세상 인심은 그만큼 고약해졌다.

돌이켜보면 경제성장 주술의 창안자들은 기실 기독교를 주술화하여 중세 암흑기를 이끈 사람들의 후예이다. 그들은 주술화된 종교에서 배운 것을 돈 버는 일에 적용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 기괴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샤머니즘도 마찬가지다. 오랜 세월 국가 이데올로기였던 불교와 유교의 탄압 아래 먹고 살기 위해 저잣거리에서 얄팍한 주술로 사람들의 주머니를 노리다가 지금은 아예 종교나 철학의 면모를 잃어버리고 주술로만 인식되고 있다.

대통령 부부가 빠져있는 것도 이 계열의 주술로 보인다. 게다가 우리와는 풍토가 다른 일본 신도(神道) 전통에서 만들어진 주술을 들여와 일인들이 주장하는 ‘내선일체’에 앞장서고 있다. 나는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친일파 문제를 거론하며 “일인들이 우리를 동등한 시민으로 인식하고 대우해 준다면 굳이 내선일체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썼더니 한 젊은이가 “일본인의 상식을 믿으시고 지금부터라도 마음 놓고 친일하세요”라고 댓글을 단 일이 있었다. 이 정도로 일본이 우리 안에 깊이 들어와 있었나? 놀라면서 대통령의 일본 주술이 결코 예외적 일이 아님을 인정해야 했다.

주술이라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기만 하다면 구태여 이런 글을 쓸 필요가 없다. 개인적 차원의 주술은 잘못되더라도 피해가 개인과 그 주변에 한정되지만, 더 큰 범위에 적용되는 주술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특히나 경제성장 같은 주술은 비록 행위는 개인적일지라도 그 후과는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더더욱 깊이 생각해야 한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지구촌 대부분 나라는 어떻게 빨리 경제성장을 해야 할 것인지가 가장 큰 과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성장의 결과로 나타난 기후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가장 큰 관심사가 되었다. 사실 경제성장을 그만두면 기후가 좋아진다는 것을 코로나 사태를 통해 확인한 바 있지만, 이미 주술에 푹 빠져버린 사람들은 경제성장을 하면서도 기후위기를 극복할 방도가 없을까 하고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제거하려 하지 않고 결과만 제거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것을 실현하려면 그야말로 초자연적 힘이 필요하다. 주술에 빠져 이런 결과를 맞이했는데 이를 극복하려고 또 다른 주술을 도입한다? 주술의 악순환에 빠진 이들이 결국 당도하는 곳은 패가망신이나 국가 부도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례가 있다. 이스터섬의 비극이나 나우루 공화국의 몰락이 좋은 예이다.


주술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게 보일 정도이다. 사람들은 경제성장을 그만두면 굶어 죽거나 혹은 이웃 나라의 노예로 전락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중독 치료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으면 금단현상으로 인해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 기간을 어떻게 해서라도 견뎌내면 알코올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경제성장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장을 그만두면 당장에 생활 수준이 떨어진다. 개인의 생활수준뿐 아니라 국민 세금으로 만든 모든 시설의 관리수준도 떨어진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삼류 국가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정신은 주술에 사로잡혀 있는데 수준만 떨어지면 삼류 국가가 맞다. 그러나 정신 수준을 높이고 물질 수준을 낮추면 일류니 이류니 하는 구분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사회가 나타난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찌 보면 이중의 주술에 걸려있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더 모를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 모두가 주술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 부부에게 주술에서 깨어나시오! 하고 호통칠 수 있다.

사실 대통령이 빠져 있는 주술은 심각하기 이를 데 없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냉각수를 바다로 방류할 때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면서까지 지지한 것은 그가 빠져 있는 이중의 주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주술행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나 동아시아 역사에서 일본의 경제성장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아무런 인식이 없는 듯 보인다. 일본은 장기 침체에 빠진 자국 경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후쿠시마 사고 여파로 중단된 원전을 소리소문 없이 재가동하고 있다. 냉각수 방류는 그를 위한 일차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이다. 경제성장 신화를 쓴 일본 극우 세력과 정서적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윤석열이 일본식 주술에 빠져 일본의 성장이 곧 한국의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탄핵도 좋지만 지금은 주술을 깨는 일이 더 급하다. 윤석열을 끌어내린다고 해서 파괴적인 주술행위가 중단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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