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금요일(21일)의 국회 법사위 입법청문회를 지켜보았는지 궁금하다. 작년 7월부터 8월로 이어지는 기간에 대통령 자신의 비이성적인 ‘격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에 처하게 되었는지를 똑똑히 보았는가 말이다.
청문회서 드러난 진실 추구자의 참담한 현실
채 해병 사망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 내에서도 철저하게 고립되어 “죽음과도 같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해병대 제1광역수사대 수사관은 경북경찰청 수사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무서운 세상이 올 줄 몰랐다”고 말하자 상대방은 울먹인다. 채 상병 소속 부대장이었던 이용민 중령은 정신병원에서 막 퇴원하여 약을 복용하는 상황에서도 국회 청문회에 출석했다. 해병대의 왕따로 인해 인격이 무너져 버린 이 중령은 증언 중에도 몇 번이나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아들을 잃은 채 해병의 모친은 편지에서 “미친 사람처럼 살고 있고 죽을 힘을 다해 하루하루를 사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다”며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처참할 줄은 정말 몰랐다. 지난 주 청문회가 그 고통의 실상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생업을 뒤로 하고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예비역들이 흘린 땀과 눈물도 이제는 전설이 되고 있다. 해병대는 지휘관계에서 상하 간의 건강한 신뢰가 붕괴되었다. 사건을 조작하고 왜곡한 고위 공직자들은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선서도 거부하며 진실에 등을 돌렸다. 그들 마음도 편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장면을 다 보고도 대통령과 그 주변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들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이 모든 고통은 다 어디서 왔을까? 오직 하나.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로 인한 비정상적인 사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위공직자수사처가 국방부와 해병대 주요 관계자들을 압수 수색하던 올해 1월 경만 해도 이 사태는 윤 대통령의 작년 7월 31일의 격노로 인해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무리하게 대통령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고 왜곡한 사건쯤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국회 입법청문회가 열리는 지난주에 공개된 작년 8월 2일의 통화 기록은 윤 대통령 본인이 경북경찰청에 이첩된 서류를 회수하고, 이에 저항하는 해병대와 박 대령을 항명 집단으로 낙인찍어 초토화하는 데 직접 관여한 정황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마치 병원장이 담당 의사를 제끼고 직접 메스를 들어 의료행위를 하는 것처럼 윤 대통령의 손에 피가 묻어있다는 황당하고 충격적인 진실을 드러낸다.
‘실수’로 드디어 드러난 진실은 대통령의 ‘직접 개입’
청문회에 출석한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작년 8월 2일 오후 4시 21분에 윤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전화가 “회수에 관한 것”이라고 발설하는 ‘실수’를 범했다. 경북경찰청으로부터의 사건 기록 회수에 대해서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해병대 수사단의 항명으로 이첩된 서류이기 때문에 자신이 회수를 해도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결정한 것이라는 기존 입장과도 배치된다. 게다가 또 다른 통화기록에서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회수 결정 직전에 대통령실 임기훈 국방비서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 유 법무관리관이 임 비서관으로부터의 전화는 “경북경찰청으로부터 전화가 올 것”이라고 알려주는 내용이라고 청문회에서 실토했다. 경북경찰청에 기록 회수를 압박한 당사자가 바로 대통령실이며, 이를 윤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했다는 점을 유 관리관이 자백한 셈이다. 유 관리관이 경북경찰청과 통화하는 순간에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이 유 관리관과 함께 있었다. 이들은 기록 회수에 해병대 수사단이 반발할 것으로 보고 해병대 수사단의 입을 틀어막을 궁리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날 저녁에 박 대령을 항명수괴죄로 입건하고 곧바로 수사단을 압수수색하는 초유의 사태가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은 윤 대통령이 눈을 부릅뜨고 윽박지르는 상황에서 혼비백산한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법기술자들이 대통령의 노기를 달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윤 대통령의 광기에 의한 광란의 하루였다.
해병대 자체를 위협한 광란의 하루
이날의 광란은 해병대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김계환 사령관을 비롯한 해병대 지휘부는 해병대 전체가 대통령에게 항명하는 반역 집단으로 초토화되느니 박정훈 대령 한 명의 망상으로 인해 벌어진 사태로 정리되는 것이 일단 해병대 위기를 수습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아마도 윤 대통령은 해병대 수사단이 아니라 김계환 사령관이 자신의 이첩 보류 지시를 어긴 것이라고 의심하고 그날 국방부 검사들로 하여금 김계환 사령관을 조사하도록 했다. 4시간의 조사를 마친 김 사령관은 수사단의 광역수사대장에게 전화를 하여 자신이 조사받은 사실을 알려주며 이후 상황에 대비하도록 한다. 덧붙여서 그는 “(국방부가) 이렇게 하다가 안 되면 나중에 (박정훈 대령이)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것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한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김 사령관은 국방부가 위법한 지시를 한 데 대해 박 대령이 ‘답답해서’ 고민을 하다가 경북경찰청에 이첩을 한 것이니 “어떻게 됐든 간에 우리는 지금까지 거짓 없이 했으니까 됐어”라며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 한다”고 수사단을 위로한다. 해병대 조직을 보호해야한다는 절박함과 박 대령의 이첩이 정당했음을 동시에 대변해야 하는 사령관의 고뇌가 엿보인다. 여기까지는 사령관으로서의 어려운 처지로 이해되지만, 청문회 증인으로서의 그는 힘에 굴복하여 거짓을 말하거나 체념한 듯 진술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극단적 소수가 힘과 궤변으로 법과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사회
청문회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 뚜렷한 흐름을 발견한다. 첫 번째는 권력자 한 명의 광기와 집착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을 지탱하고 있는 법과 시스템을 단 하루 만에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가공할 위험이다. 두 번째는 그 위험에 맞서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고위 공직자 그 누구도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직언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원죄가 바로 국회 청문회에서 증인선서와 증언 거부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방화벽이 무너져 있어 언제든 와해 될 수 있는 위험에 처했다고 보아야 한다.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한 이 공화국에서는 법과 시스템보다 힘과 궤변이 더 판을 친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국회는 더 이상의 광기로 민주정이 유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긴급히 조치할 사항이 있다. 먼저 경북경찰청이 조만간 채 해병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걸 막는 조치다. 이첩 서류를 국방부에 순순히 내주고 채 해병이 사망한 지 1년이 다 되도록 수사를 미뤄온 경북경찰청이 공정한 수사를 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대통령실 전화에 이첩받은 서류가 정식으로 이첩받은 것이 아니니 회수라는 용어를 쓰도록 국방부에 서류 탈취의 방법까지 알려주었던 경북경찰청이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임성근 전 해병 1사단장을 무혐의나 가벼운 죄질로 판단한다면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이를 근거로 일제히 역공에 나설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실 규명의 민의도 짓밟히게 된다. 이미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7월까지 수사를 마치도록 경북경찰청에 공개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다.
박정훈, 이용민, 그리고 민주주의를 긴급 구제해야 한다
두 번째는 박정훈 대령, 이용민 중령을 비롯한 해병대 주요 관계자들을 긴급 구제하는 조치다. 이들이 조직 내에서 극도로 고립되어 사실상 감금 상태에 있다는 점이 확인된 이상 해병대 사령부로부터 이들에 대한 근무를 통제하는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 이들이 보다 자유롭고 건강한 상태에서 진실을 말하도록 온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법 방탄의 논리로 얼룩진 한국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다. 고위 공직자가 위법한 명령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정부의 공적 가치를 재확립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구상해야 한다. 공직자에게 위법한 지시나 명령에 대해 반드시 소명하거나 거부해야 하는 의무를 일깨우지 않으면 이 정부는 대통령과 그 주변의 안위를 위한 방탄의 도구로 전락하게 될 위험이 크다. 그 위험을 차단하지 않으면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민주주의 이전 사회로 대한민국이 퇴행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미 이스라엘과 헝가리, 폴란드와 인도에서 우리는 그런 퇴행을 목격했다. 지금 야당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모든 힘을 다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