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페이지에서 문의
모바일모드
맨위로
> 커뮤니티 > 칼럼 > 상세보기
Job Talk
현재접속자
칼럼
칼럼 코너"조용한 혁명' 통해 촛불 시민혁명 2기 열어야"
BY 제니2024-05-20 10:12:15
2311300

야당의 압승으로 끝난 22대 총선 결과는 정치적 지형의 변화를 넘어서 한국 사회 근본적인 개혁에 대한 새로운 전망과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거대한 퇴행 저지 등 당장의 정치사회적 현안을 넘어서 미완의 촛불민주주의혁명 2기를 열어 6월 항쟁의 산물인 '87년 체제'와 외환위기의 결과물인 '98년 체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다양하게 분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등 범야권에서는 대통령 임기 단축을 전제로 한 4년 중임제와 대통령거부권 제한, 5·18 헌법 수록 등을 위한 개헌안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권력구조 개편 이상으로 실질적 민주화를 이루는 선진국형 민주주의체제로서의 제7공화국 개막을 위한 개헌 주장도 커지고 있다. 

김영호 동북아평화센터 이사장(전 산업자원장관ㆍ유한대 총장)은 그동안 한국의 촛불민주주의 혁명이 세계사적인 큰 의의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어버렸다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서 촛불혁명을 되살려내고 완수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직접민주주의 개헌운동과 자치분권운동을 벌이고 있고 지난해 출간한 <담대한 혁신사회플랜>에서 '마을로 간 촛불민주주의혁명'의 과제를 제시한 임진철 직접민주마을자치전국민회 상임의장이 김 이사장에게 새로운 정치지형에서 촛불혁명이 제대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으며 과제는 무엇인지를 묻는 대담을 가졌다.

이 대담에서 김영호 이사장은 "87년 체제가 아시아 민주주의로서는 최고로 간 것이었으며 촛불 혁명으로 직접 민주주의가 보완되는 형태가 되면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로 갈 것이라고 봤으나 그에 실패하고 말았다"면서 "이제 한국사회에 요구되는 각 분야의 개혁을 전부 다 연결시키는 총체적인 '조용한 혁명'을 통해 표류해 온 촛불 시민혁명의 2기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 세력에 대한 불신임일 뿐, 진보의 승리 아니다

사회(이명재 민들레 에디터): 이번 총선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해 보자. 여당의 참패이지만 과연 야당의 승리라고 볼 수 있는가. 또 22대 국회에 어떤 과제를 제기한다고 보는가.


김영호 전 산업자원부 장관
김영호: 나는 한국의 진보 세력의 승리라고 보고 싶지 않다. 보수 세력에 불신임을 보낸 것일 뿐이다. 진보 세력의 정책과 보수 세력의 정책이 대결한 측면은 거의 없었다. 진보 세력의 진면목도 안 나왔고 보수 세력의 진면목도 안 나온 그런 보수 진보 양쪽의 불신임이 이번에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보수가 보수 나름대로 재구성돼야 되고 진보가 진보 나름대로 재구성돼야 한다는 그런 재출발의 신호가 각각에게 주어졌다.

민생 문제의 핵심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민생 문제의 핵심은 우리나라 산업의 붕괴에 있는데 그 핵심은 전혀 건드리지 않고 표면만 건드렸을 뿐이다.

임진철: 대부분 사람들이 저출산, 초고령화, 지역 소멸 등의 문제와 개헌과 제7공화국 문제가 이번 총선에서 거론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인구대응부를 만들어야 된다, 이런 정도에 그쳤을 뿐 총선 공론장에서 거의 얘기가 안 됐다. 어찌 됐든 윤석열 정부를 끌어내려야 된다는 데 너무 화력을 집중하다 보니까 국가비전과 정책 공약이나 혁신진보담론등은 거의 얘기가 안 되는 그런 상황으로 끝났다.

사회: 정책이 실종되고 장기적인 과제에 대한 의제 제시가 안 됐다 하는 점들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번 선거가 한국 사회의 거대한 퇴행과 폭주 권력을 어떻게 저지하느냐가 필사적인 과제로 제기됐던 상황에서 불가피했다고 보는데.

김영호: 선거 책략적인 측면, 민생 측면, 그리고 좀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국가 전략 세 가지 차원이 있을 텐데 그중에서 첫 번째 정략적 측면이 메인 이슈가 됐고, 민생 문제가 약간 가미가 됐지만 국가적인 큰 전략과 같은 기본 문제는 거의 제기가 안 됐다. 세 가지 차원 가운데서 첫째 차원에만 머물러서 시종하기에는 한국이 놓인 현실이 너무나 무겁다. 근본적인 큰 문제를 외면하고 정략적인 문제만 얘기하는 차원을 넘어가야 된다.

더구나 선거가 끝난 이 마당에서는 그 점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우리가 큰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점을 언론에서도 놓치고 있는 것 같고, 정치계에서도 놓치고 있다.

장기적 국가적 비전과 전략에 대한 논의 너무 미흡

사회: 그것에 오늘 대담의 의의가 있다고 본다. 선거전 때는 그렇다 하더라도 선거가 끝난 시점에서는 미처 제기하지 못했던 장기적이고 국가적인 비전과 전략에 대해서 논의가 돼야 될 텐데 그런 논의가 너무나 아직 미흡하다. 민들레를 포함해 언론들이 반성해야 될 점이다.


임진철 직접민주마을자치전국민회 상임의장 
임진철: 촛불혁명 때도 비슷했다. 2017년 4월에 140개 단체가 모여서 '촛불혁명 대헌장 제정 범국민협의회'를 구성했다. 촛불혁명은 일종의 시민권력이기 때문에 촛불혁명이라는 직접민주주의 시민권력을 구조화시키고 대의제 권력과 협치 구조를 만들어서 촛불혁명의 대의를 지속적으로 실현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수 정당들이 거부했고, 유야무야 끝나버렸다. 그 후로 촛불 혁명이 길을 잃었다라는 비판이 나왔고, 다급한 목전의 문제 해결에만 그쳤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야당이 180석 이상을 얻었지만 그때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주도 개헌 범국민운동본부같은 국민운동기구를 구성해서 시민사회가 직접민주주의 시민권력을 만들어가면서 정치권을 압박하고 추동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여야 정치권의 개헌논의들을 보면 대의정치인들이나 관료들에 대한 국민적 통제시스템과 관련된 직접민주주의제도나 자치분권문제는 쏙 빼놓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주도 개헌논의와 공론화가 정말로 중요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있는 시민사회단체들, 그동안 내가 몸담고 있는 직접민주마을자치전국민회를 비롯하여 직접민주주의개헌운동과 자치분권운동을 해왔던 단체들로 구성된 만민공동회, 범보수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기구인 범시민사회단체연합(범사련) 그리고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기구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연대회의)가 논의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김영호: 촛불 혁명이 어디로 갔느냐? 지금 어쩌다가 가끔 촛불혁명 이야기가 나오면은 그래 그게 있었지 하고 새삼스럽게 생각할 정도로 촛불 혁명의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생각한다. 촛불혁명의 꿈과 로망이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사라졌느냐? 나는 지식인 사회에서 또 정치계에서 이것을 살리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식인 사회에서 촛불혁명의 개념을 백낙청 씨와 최장집 교수가 규정한 것이 거의 주류처럼 됐는데 그분들은 촛불 혁명을 박정희 패러다임의 종언이라는 차원에서만 해석했다. 또 촛불혁명의 결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를 촛불 정부라고 했는데 촛불 정부가 촛불혁명을 이용만 했지 구현하지 못했다. 지식인 사회와 정치, 양쪽의 책임이다.

촛불 운동은 운동이 아니고 혁명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로서의 성격을 못 갖췄다. 문재인 정권을 촛불 1기 정부라고 얘기를 하는데 앞으로 2기 정부가 들어서야 된다.

난 그런 차원에서 임진철 의장이 쓴 책에서 촛불혁명을 87년 체제의 극복이라는 차원에서 의의를 설명한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촛불혁명을 마을 운동, 마을 공화국-마을연방민주공화국-마을공화국 지구연방으로까지 연결 확장시킨 점이 조금 너무 먼 길을 제시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핵심의 일부를 찔렀다고 본다. 결국 노자 이래의 소국과민(小國寡民)의 비전이 다산 정약용에서 '여전제'론으로 발전했고 또 간디로, 만년의 칼 맑스로 갔고, 그것이 임진철의 마을로 간 촛불민주주의 혁명이라는 그 개념 속에 되살아난 것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임진철: 촛불혁명이 세계사적 의의를 가진 점을 정다산의 개혁론으로부터 시작해서 동학혁명, 3.1운동, 4.19혁명, 87년 6월 민주화운동, 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말씀하시는 게 감명 깊었다. 촛불혁명의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 대해 우리 지성사회가 이해하는 게 참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촛불혁명이 항쟁이나 혁명이냐, 라는 논란이 있다. 나는 연속혁명의 관점에서 촛불혁명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향한 혁명이라고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단의 직접민주주의마을공화국운동과 생명평화운동세력, 그리고 지역 풀뿌리민주주의세력들은 광장민주주의를 넘어 마을과 지역으로 파고 들어가 “마을로부터 시작하는 상향식 민주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출해 마을로 간 촛불민주주의 혁명을 주창하며 실천에 옮기기에 이르렀다.

촛불 민주주의 혁명, 마을로 갈 때 완성 

“마을로 간 촛불민주주의혁명”의 과제는 네 가지이다.

첫째는 촛불의 일상화이다. 김누리 교수가 이야기하듯이 유럽처럼 68혁명 같은 총체적 사회문화혁명을 거치지 않은 나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국가” 모습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비폭력대화, 인디언식 공감토론 같은 생활문화민주주의의 안착이다.

둘째는 촛불의 지역적 상설화이다. 우리에게는 마을민주주의와 지역자치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이 없다. 읍면동 단위에는 마을자치정부가 만들어져 주민자치로 마을살림살이가 이루어지고, 시군구 단위에는 지역자치당이 만들어져 지역공론을 형성해나가야 한다.

셋째는 촛불의 국가적 제도화이다. 제헌의회는 직접-대의 융합민주주의체제였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은 장기독재를 위해 읍면동 주민자치 등 직접민주주의민치시스템을 폐지했고, 4.19혁명 후 다시 부활하는가 싶더니 다시 박정희 군사쿠데타로 훼절되었다. 1987년 6.10시민대항쟁으로 대의민주주의 중앙집권통치체제인 87년체제가 자리잡았으나 직접민주주의민치시스템이 훼절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발안, 국민소환, 국민투표 기반의 ‘시민정치’와 읍면동 단위의 ‘주민자치’ 그리고 시민의회 등을 통한 숙의민주주의 ‘공론정치’와 같은 직접민주주의 민치시스템의 복원과 현대적 제도화가 시급하다.

넷째는 촛불의 글로벌화이다. 세계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위기 그리고 지역(공동체)해체위기라는 3중위기에 처해 있다. 이를 지구적 범위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을공화국-마을연방민주공화국-마을공화국 지구연방의 3중체제로 지구질서를 재구축해야 한다.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2016년 촛불집회 현장 속 시민들의 모습. 2016.12.29 연합뉴스
김영호: 나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진보 계열에서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의 역사관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의존하는 한 NL-PD로 논의되는, 결국은 모택동주의나 김일성주의라는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동학의 개벽사관, 생명평화론의 입장에서 보는 게 참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동학의 개벽사관 내지 생명평화론은 전봉준의 동학혁명의 배경이 됐을 뿐만 아니라 3.1운동의 원천, 즉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라는 외적 요인보다 더 본질적 내적 요인이었다고 본다.

외적 요인이 세계에 펼쳐졌을 때 한국이 먼저 움직였다. 한국이 움직였던 그 내적 요인이 바로 생명평화론이었다고 생각한다. 생명평화론, 혹은 개벽론이라고 해도 좋은데, 그것이 3.1운동을 일으킨 내적 요인이었다. 그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이 결합해서 3.1운동이 일어났고 그리고 그것이 중국의 5.4운동으로 파급되고 다시 그것이 인도 베트남을 거쳐서 인도의 독립운동까지 연결됐다는 점에서 나는 20세기의 세계평화운동의 핵심 원점은 파리 강화회의가 아니고 3.1운동이었다고 본다.

그것이 나중에 4.19로 연결되고 그 모태에서 다시 6월항쟁으로, 그래서 한국의 87년 체제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다시 진화해서 촛불혁명까지 왔다. 그러나 촛불 혁명이 하나의 제도로서 확립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의 근대 근현대사를 <해방 전후사의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서 생명평화론의 틀로 보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것이 과거도 잘 설명하고 앞으로의 미래 우리의 방향도 잘 설명해 준다.

임진철: 구한말에 위정척사파와 개화파만 있었던 것으로 이야기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 당시에 우리 민족 내부에서 생성발전해온 개벽적 근대를 추진해온 개벽파가 있었다. 그런데 개벽파가 워낙 동학혁명으로 인하여 처절하게 깨지면서 거의 멸절되다시피 하는 바람에 수면 위로 등장하지 못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나 오늘날 생명평화 사상으로 다시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역사적인 운동들의 맥을 이어나가며 꽃을 피우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촛불혁명운동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나온 단발적인 운동이 아니라 역사적인 연속성을 갖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직접민주주의 결합, 제대로 꽃 피워야

김영호: 촛불혁명을 87년 체제의 극복이라는 차원에서 보자. 촛불혁명 때 의회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 요소로서 보완을 하면, 87년 체제가 아시아 민주주의로서는 그 당시 최고였던 것에서 아시아에서만이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로 갔을 것이다.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에서 세계 전체의 앞 순위는 북유럽의 소국들이 차지했지만 세계의 3050클럽(1인당 소득 3만 달러, 인구 5천만 이상 국가들) 중에서 한국을 1위로 꼽았었는데 2024년도에는 47위로 떨어져 있다.

지금 세계에서 스위스는 최첨단 민주주의를 모범적으로 실현하고 있고, 또한 대의제 약점을 직접 민주주의로 보완하는 실험을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에서 맹렬히 보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운동이 잠재되어 있지만 꽃 피지는 못하고 있다.

촛불 혁명 때 10대 강령 중의 하나로 재벌공화국의 극복이 들어 있었지만 87년 체제가 아직 의회민주주의제와 재벌공화국 체제의 결합에서 37년이 지나는 동안 갇혀 있다. 질식 상태에 빠져서 그 이상으로 못 가고 있다. 질식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게 세계 최고의 자살률, 세계 최저의 출생률 또 세계 최고의 규제 국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부채 증가율이다. 그래서 87년 체제의 극복은 너무나 중요한데 그 문제를 여든 야든 지금 놓치고 있다.

'이채양명주' 같은 권력의 부패에서 생기는 문제들에 과도하게 잡혀서 큰 문제는 놓쳐버리고 있는데, '큰 문제'를 빨리 되찾아야 한다. 이채양명주를 빨리 극복하고 우리의 핵심적인 과제를 되찾지 않으면 우리 미래가 없다.

임진철: 전적으로 동감한다. 87년 체제가 세계의 3050클럽에서는 세계 민주주의 국가 1순위까지 갔다가 지금 47위로 전락했는데, 그 당시에는 매우 진보적인 체제였다. 그러나 3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헬조선 신양반 사회'를 만들어내는 구체제로 변질됐다. 생명력을 소진하여 영혼 없는 산송장 같은 ‘좀비민주주의체제'로까지 갔다고 규정하고 싶다.

그 좀비민주주의체제 증후군이 87년 체제의 기득권인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 체제, 팬덤 정치, 재벌과 언론들의 야합에 의한 선거의 정치경마장화다. 이런 상황이 몰아치면 이로 인해 대중들은 정책공약을 꼼꼼히 살펴볼 겨를이 없이 진영정치의 동원세력 아니면 구경꾼 민주주의대중이 되어버린다. 제대로 된 국가비전이나 정책공약이 나오지 않은 채 경마장 몰이 하듯이 진영간 패싸움하듯이 진행된 이번 4.10 총선이야말로 좀비민주주의정치의 깊은 증상을 드러냈다고 볼수 있다.

현재 한국의 경제와 문화 부분 등은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나 선진국체제로 진입하였으나 유독 정치만 급기야 좀비민주주의체제로까지 전락했을까? 그렇게 된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개발도상 중진국체제인 외발민주주의체제, 대의민주주의중앙집권통치제제에 발목을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87년 체제는 통치(統治)만 있고 민치(民治)는 없는 체제이다. 통치는 관치(官治)와 대의정치(代議政治)를 통칭하는 말이고 민치는 직접민주주의 시민정치와 읍면동 풀뿌리 단위에서의 주민자치, 그리고 숙의토론민주주의에 기반한 공론정치(시민의회나 국가공공성토론위원회등을 통한)를 통칭하는 말이다.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95% 이상이 문맹이고 국가의 영토가 너무 넓어 직접민주주의를 할 수가 없어 고안된 정치제도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대학진학률이 80%를 넘고 블록체인기술과 디지털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인하여 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예전에 국민투표 한 번 하는 데 900억이나 든다 했는데 오늘날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면 불과 2, 3억 원으로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에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제도를 시행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대의정치인들의 직무유기이며 어쩌면 대국민 사기행각에 가깝다.

그러기에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자크 낭시에르는 그의 저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에서 대의민주주의 ‘통치’는 ‘치안행위’에 다름아니고 ‘정치’는 직접민주주의 ‘민치’일 때 진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대의민주주의는 가짜민주주의라고까지 급진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큰 문제'를 빨리 되찾자

김영호: 87년 체제를 얘기할 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점은 98년 체제에 대한 것이다. 외환위기에 빠졌을 때 그걸 어떻게 극복했냐면 해외 투기자본을 마구 끌어들인 방식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외국 투기자본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경제가 돼 있다. 그 당시 투기자본 세력의 상징적인 인물인 조지 소로스가 말레이시아에 입국을 하려고 했는데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이 입국을 막았다. '당신이 아시아 금융위기의 주범인데 어떻게 말레이시아에 들어올 수가 있느냐' 하고 입국을 금지시켰다. 거기서 거부당하고 찾아온 곳이 한국이었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막 당선되었을 때다. 대통령 당선자 자격으로 환대를 했고 투기자본을 마구 끌어들여서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는 방식을 초래했다. 그 당시에 나는 '김대중과 마하티르의 악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김대중 쪽에서 마하티르 정책을 조금도 쓰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국 경제가 재벌과 투기자본의 제휴 속에서 30여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의회 민주 엘리트와 재벌 체제와 투기자본 세력, 이 3자의 동맹 체제가 지금까지 한국을 끌고 온 주류 세력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의 기업은 삼성 같은 곳도 외국 자본이 거의 60%까지 들어와 있다. 전 산업의 20~30% 이상 차지하는 이 투기자본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사장 자리가 유지가 안 된다. 그러니까 지속가능 경쟁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주주자본주의였던 미국은 2010년에 대표적인 기업가 181명이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스스로 오랜 전통인 주주 자본주의를 졸업하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간다고 합의했다. 이것을 다보스 포럼의 의제로 제시해서 미국과 유럽은 주주 자본주의로부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이행해, 주주가 아닌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봉사하는 기업으로 간다고 했다. 기후 문제에도 앞장서는 그런 기업이 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의 기업은 아직 주주 자본주의도 아닌 '오너' 자본주의다. 그게 지금 한국의 주가가 세계에서 제일 낮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87년 체제 하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저 밑에, 뒤에 있다.

이게 87년 체제와 98년, 2008년 금융위기 체제의 유산이다. 이를 극복 못하면 출생률 문제, 자살률 문제들이 해결될 길이 없다.

임진철: 그렇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한국의 정치는 좀비민주주의체제로 전락되었고 경제는 엘리트카르텔 부패체제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부패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이클 존스턴 교수는 엘리트카르텔 부패 유형에 대해 설명하기를, 한 국가의 정치권, 사법부, 재벌, 언론 등에 포진한 엘리트들이 조직적으로 뭉쳐서 국민들을 등쳐먹는 행태라고 이야기하면서 한국이 대표적인 국가라고 규정했다.

성남시 대장동 사건에서 보았듯이 김만배라는 일개 신문기자가 어떻게 수천 억을 주무르며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검사로 알려진 곽상도 전 의원의 나이 어린 아들의 퇴직금이 어떻게 50억이나 되는지 국민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국민들의 직접적인 통제력이 없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외발민주주의체제야말로 엘리트카르텔 부패가 서식하기 아주 좋은 체제이다.

이걸 극복할 방법이 외발민주주의체제인 87년 체제 내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다.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해서 국민이 직접 나서서 대의민주주의 통치체제를 감시 견제하고 압박하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23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정치 현인 아리스토텔레스나 근대의 사회계약론자인 루소는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과 한계를 일찍이 설파했다. “대의민주주의 선거제하의 인민은 투표 당일 하루만 주인이고 그 외의 날은 대의정치인의 노예로 살게 된다”라고.

스위스는 보충성의 원리와 연방제 원리를 통해서 아래로부터 읍면동 단위의 꼬뮨과 칸톤(지방정부) 그리고 연방정부라는 3중 연방 체제와 직접민주제와 대의민주제의 협치체제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재정분권도 잘 되어 있어 국가예산의 30%를 꼬뮨이 쓰고 칸톤이 40%를, 그리고 연방정부가 30%를 쓴다. 스위스야말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기적의 나라로 여겨진다. 인구가 천 만밖에 안 되니까 그게 가능한 것 아니냐라고 얘기들 한다. 그러면 인구가 우리보다 많은 프랑스는 어떤가? 프랑스는 골머리 앓던 저출산 초고령화 지역소멸 문제를 2003년도에 읍면동 단위의 꼬뮨을 기초자치단체로 헌법에 못 박으면서 전통적인 대의민주주의중앙집권 통치체제와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민치체제 투트랙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이를 극복했다.

한국정치가 87년 6월민주화대항쟁 이후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발민주주의에 기대고 있는 동안 87년체제는 좀비민주주의체제로 전락되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협치하는 양발민주주의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대장동같은 엘리트카르텔 부패사건은 계속될 것이고 윤석열 검찰독재정권 같은 것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


시민사회의 역동성, 의회와 정부 기업으로부터 배제

김영호: 시민사회의 다이나믹스가 의회에 연결이 안 되고 배제되어 있다. 정부에서도 관료주의에 의해서 막히고 있다. 그리고 기업에도 배제되고 있다. 그러니까 의회만이 아니고 정부에서도, 그리고 기업의 기업 민주주의에서도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쪽만이 아니고 전반적인 배제인 것이다. 난 여기에서 한국의 미래가 사라지고 있다고 본다. 누군가 말했듯 미래의 식민지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부의 불평등도를 보자. 부의 불평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피케티가 말하는 베타 지수, 소득 대비 자산 비율로 나타내는 자산 불평등도가 선진국이 대체로 5~6인데 한국은 7~8이다. 어떤 사람은 9라고까지 한다. 7, 8은 프랑스 혁명 전야의 수준이다. 미국과 같은 수준의 소득 불평등 국가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미국이 우리와 다른 점은 새로운 부의 창출자가 새로 등장한 기업들이라는 것이다. 애플을 비롯해서 새로운 기업들이다. 그러나 한국은 거의 다 박정희 때의 재벌들이다. 한국은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지 않는, '과거가 미래를 지배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과거의 금수저가 새로운 미래의 금수저가 되고, 과거의 사다리가 미래의 사다리가 되는, 과거가 미래를 지배하는 사회이다. 미국에서 새로운 부의 축적이 혁신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미국보다도 나쁜 불평등, 세계 최악의 불평등 구조 속에 지금 갇혀 있다.

그러니까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하고 아기를 안 낳는 것인데, 이런 구조가 큰 문제지만 이 구조에 대해서 정면 도전하는 움직임이 거의 안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굉장히 실망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고, 정책이 무능한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만큼 나쁜 정책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정책이 나쁘기로서는 보수도 엉망이지만 진보도 엉망이었다 하는 점을 냉정히 볼 필요가 있다.

보다 큰 과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엄중하다. 지금 '삼성 위기론'이 매우 심각한데, 현 체제하에서는 대기업도 지속해서 발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면 이 첨단 산업기술의 혁신 와중에서 가족 간에 2대 3대 4대로 물려줘서는 세계적인 기업과 경쟁하는 데 너무나 힘이 부친다. 그러니까 일반 민중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대기업도 어렵다.

삼성 위기론은 삼성의 반도체 상황에 나타나 있는데,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물론이고 디램 부문에서도 뒤처지고, AI 시대에 전혀 적응을 못하고 있다. SK 하이닉스에도 밀리는 꼴이 되고 지금 AI 시대에 각광을 받고 있는 고대역 메모리 부분에서 삼성이 맥을 못 추고 있다. 또 AI 부문의 경쟁이 뜨겁기 전에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기업인 피규어 AI를 인수하려고 교섭하다가 마지막 판에 놓쳐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삼성의 위기가 오히려 재벌 재조정의 기회가 아닐까 싶다. 이재용 회장이 자신은 아들들에게 삼성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감옥에서 나오면서 한 이 얘기에서 뭔가 재벌 개혁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재벌 개혁'이라는 말을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사람들이 쓰기를 꺼리므로 '재벌 조정' 정도로 해 두자. 다시 말하면 재벌의 오너 체제부터 주주자본주의로의 전환 정도는 최소한 해야 되고, 나아가 노동자와 소비자에 대한 봉사 CSR ESG 체제로 옮겨져야 되는데 한국은 너무나 후진적이다.

'헬조선 신양반제 사회' 극복 위한 방안들

임진철: 말씀에 부연해서 불평등문제와 연동된 저출산초고령화 지역소멸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한국인들은 8.8을 오르내리는 세계최고의 피케티지수(불평등 지수)를 자랑하는 헬조선신양반제사회(토지자산지표상으로는 1:9:90%, 소득지표상으로는 1:19:80%의 나쁜불평등사회)를 살아내고 있다.

게다가 0.65대의 세계 최고의 출산율과 초고령화율이 함께 닥쳐 북한의 군사적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사회적 핵폭탄을 맞은 위기상황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불평등문제와 저출산초고령화지역소멸 문제가 별개의 사안이라고 생각하는데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문제라고 본다.

한국사회는 헬조선신양반제사회를 시급히 극복하고 1:39:60%의 자유안정성 공평사회(좋은 불평등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 지구 재야생화프로젝트(제레미 리프킨)에 기반한 탈성장 탈중앙 성숙사회인 초록문명생명사회(Eco-dream Society)를 예비하려면, 농산어촌에 대한 특별한 통찰이 필요하고 국가적인 농산어촌 유토피아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지금 한국은 저출산 극복이 초미의 국가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뾰족한 저출산 극복 해법이 없다고들 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저출산 극복 해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다.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그 근본해법을 뻔히 알면서도 꿀단지와도 같은 수도권 부동산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수도권 일극체제를 탈피할 생각이 없고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을 할 생각이 없기에 그런 것이다. 그것은 국민들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대국민 사기를 치는 행위에 가깝다.

생각해보자! 동물들도 경쟁이 치열해지면 후대를 낳지 않고 생존경쟁에 몰입한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수도권에 인구 절반을 몰아넣고 승자독식 무한경쟁을 시키니 모든 육아와 보육단계마다 돈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독박육아를 감당할 수 있는 금은수저 집안 출신 아니고는 어느 젊은이가 결혼하고 애를 낳으려고 하겠는가?

얼마 전 가임기의 젊은이가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조건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기사를 보니 1위는 보육환경이고 2위는 주거안정, 3위는 일자리, 4위는 사교육 부담 없는 세상이었다. 여기서 보육환경이란 공동체육아를 의미하는 것이고 주거안정은 50년 장기임대주택 같은 것일 것이다. 농산어촌 주민기본소득제가 실시된다면 이것이 곧바로 쉽게 가능한 곳이 농산어촌지역이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를 대신하고 로봇이 인간의 팔다리 근육을 대신함으로써 일자리가 없어지는 인공지능로봇 기반 사회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일자리문제는 도시나 농촌이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교육 부담 없는 세상은 대학무상교육과 평준화정책을 쓰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출산 극복의 백미는 농산어촌지역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선상에서 이제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는 발상을 전환하고 각자의 기득권 혁파에 나서며 새로운 혁신과 창조의 시대를 살아갈 준비를 하는 사회적 합의와 공감대가 필요하다.

그것은 1970년대 이촌향도(離村向都)의 민족대이동 물결을 이제는 역류시키는 정책이다. 수도권인구 500여만 명이 농산어촌과 지방도시에 분산되고 1000여만 명의 도농교류인구가 생기도록 하는 '이도향촌(離都向村)'의 민족대이동정책(농산어촌 청년유토피아, 귀농귀촌, 듀얼라이프정책 등)을 실행하고 이 정책이 잘 안착되도록 온 국민이 함께 노력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자본주의 악마의 맷돌이 작동되는 삭막한 각자도생 모래알 사회를 넘어서는 사회적 우정과 연대의 마을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우리나라보다 20여년 일찍 저출산초고령화 지역소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런데 이제는 저출산 극복 모범국가가 되었을 뿐만아니라 저출산초고령화지역소멸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우선 저출산문제부터 살펴보면, 2020년 OECD 38개 국의 평균 출산율이 1.59인데, 프랑스는 1.8의 적정 출산율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가 저출산 극복 모범국가가 된 요인은 무엇일까?

➀가족수당이라는 이름의 다단계 출산 보육 수당 정책 ➁아이 많이 낳는 문화권(아프리카ᆞ 중동 등) 출신의 이민자수용정책 ➂1999년 시민연대협약(PACS)제도 기반 비혼 동거 자녀 차별 철폐 (프랑스는 비혼 출산율 62%이고 한국은 2.4%) ➃영유아부터 대학까지의 무상에 가까운 교육시스템 ➄가족주의 공동체 문화와 지역 꼬뮨자치 시스템의 융합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 성공 요인을 보면 위의 ➀ ➁ ➂ ➃요인은 저출산 극복의 직접적 효과를 가져오게 한 요인이고, ➄요인은 저출산 극복의 간접적 효과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다섯 번째 '가족주의 공동체 문화'와 '지역 꼬뮨자치시스템의 융합' 요인은 프랑스의 중앙집권 국가 행정체제와 풀뿌리 직접민주주의 꼬뮨(마을공화국) 체제가 결합하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요인은 ➀ ➁ ➂ ➃의 정책이 성공할 수 있게 하는 요람이자 뒷받침의 역할을 하였다. 프랑스의 시의적절한 분권자치체제 구축이야말로 저출산 관련 제반 정책의 수용성과 효과성을 매우 높여주었다. 프랑스는 저출산 극복의 직접적 정책과 간접적 정책을 종합적으로 잘 배합하여 추진한 것이 성공의 핵심요인이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저출산 초고령화 지역소멸 극복의 핵심은 아이 기르기 좋은 동네와 고독사 공포 없는 노인안심 행복마을 건설이었다. 이어서 이를 초점으로 하는 읍면동 단위 꼬뮨(마을공화국) 기반의 자치분권체제 구축과 듀얼라이프 제도(도시농촌 두 지역 살기 지원제도)와 같은 도농 상생 시스템을 통하여 지역소멸문제까지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출산과 초고령화 지역소멸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농촌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한국이 헬조선 신양반제사회라는 깊은 중병에 들고 ‘지방소멸’ 증후군이 나오게 한 핵심원인은 농산어촌 붕괴와 공동체의 해체이다. 그러면 농촌 붕괴를 기반으로 몸집을 키운 초과밀화된 수도권은 행복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또한 부동산 문제 등 수도권 도시안에서의 문제해결의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다. 농촌을 살리지 않고는 도시가 지속가능할 수 없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여 농촌을 살려내야만 도시의 문제는 물론 농촌의 문제도 해결된다. 한국의 헬조선사회 극복은 농촌과 '사회적 자궁'인 마을공동체의 부활, 이와 연계된 지역자립의 마을 공화국체제구축, 그리고 이에 기반한 수도권 도시의 재구조화와 리모델링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 균형발전과 자치분권 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읍면동장 선출제를 기반으로 한 3500여 개 읍면동 마을 자치정부 건설과 국가예산의 읍면동 마을 자치정부로의 분권재정, 농촌과 대도시를 넘나들며 살 수 있는 듀얼 라이프(Dual Life)정책, 그리고 서울대 등 국립대와 공무원의 100% 지역균형 선발제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양로원화해가는 농산어촌을 살리기 위하여 농산어촌 거주민 기본소득제, 농산어촌 자녀들의 대학까지 무상교육 우선 실시, 농산어촌 군병역 대체복무제 등을 조속히 실시해야 할 것이다.

요란한 혁명 이후에 조용한 혁명 거쳐야

김영호: 작년에 21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크리디아 골든이 <조용한 혁명>이라는 책을 썼다. 나는 그 책이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 1970년대에 미국의 전반적인 노동 조건이 현저하게 나아지고 일과 삶의 균형의 대폭 개선, 여성 인권의 큰 진전에 대해 얘기한다. 영국도 복지국가로 진입하고 북유럽 국가도 전부 다 사회민주주의로, 일본도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점령하여서 재벌 개혁이 됐다.

그러니까 몇 차례의 그런 조용한 혁명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 같은 그런 죽이는 혁명이 아니고 사회구조 개혁이 소리 없이 성공했다. 그러니까 피 흘리는 요란한 혁명 이후에 조용한 혁명을 겪은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다 그걸 겪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87년 체제와 98년 체제의 혼합 속에서 더욱 악화되고 있다. 가령 재벌 기업의 내부 거래 지수가 점점 높아가고 주주 이익 환원율이 21%로, 중국의 31%, 미국이 96%에 크게 못 미친다. 한국의 주주는 기업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의 이익은 오너 재벌가문이 차지하는 것이다.

최소한 주주 자본주의로 가서 주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부자가 되도록 해줘야 한다. 주주 환원율이 세계에서 제일 낮으니 주식이 매력이 없다. 그래서 코인에 몰리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민주주의로부터 의회 민주주의로부터 국민이 시민이 배제됐을 뿐만 아니라 이 산업사회로부터 시민이 배제되어 있다.

조용한 혁명에는 노동 개혁과 교육 개혁과 의료 개혁과 연금 개혁, 관료 개혁, 재벌 기업 개혁 이런 것을 전부 다 연결시키는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우린 그걸 과제로 살리지 못했다. 진보도 못 살렸고 보수도 못 살렸다. 이 조용한 혁명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도입을 하면 어떨까. 87년 체제의 극복에서 조용한 혁명 개념이 도입될 수가 없을까.

임진철: 그 말씀 들으면서 아래로부터의, 마을로부터의 상향식 민주공화국 건설에 대해 생각해 봤다. 마을로부터,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위로부터의 조용한 혁명이 같이 맞물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조용한 혁명은 개발도상 중진국정치체제인 87년체제를 넘어서는 선진국형 정치체제를 만들어가는 데서 찿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진국형 정치체제가 지향해야 할 정치시스템은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두발민주주의체제이다. 엘리트카르텔 부패가 서식하기 좋은 외발민주주의체제(대의민주주의중앙집권 통치체제)에서 국민의 직접민주주의정치로 엘리트카르텔을 통제할 수 있는 직접민주제-대의제 융합의 두발민주주의체제 구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을연방민주공화국체제인 스위스모델이나 대의민주주의 중앙집권체제와 직접민주주의 자치분권체제의 혼합체제인 프랑스모델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정치만족도 50점과 정치효능률 50%를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중앙집권 통치체제’를 넘어, 직접민주주의 민치(民治)가 국정의 50% 그리고 대의민주주의통치가 국정의 50%를 맡는 국정분담운영체계을 통해 정치만족도와 정치효능감 75%대의 선진정치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제대로 된 공화정이다. 제대로 된 공화정이 되려면 첫째로 계급계층간(다당제), 둘째로 제도시스템간(3권분립 시스템), 셋째로는 대의민주주의통치세력(제도권력)과 직접민주주의민치세력(시민권력)간 그리고 넷째로 중앙과 지방간에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한국은 다당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계급계층간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1%와 10%의 핵심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양당이 국민전체를 대변한다는 듯이 과다대표하고 있다. 한국의 3권분립시스템이 많이 정착되었다고 볼수 있으나 엘리트카르텔세력이 3권과 재벌 언론의 상층에 포진하여 조직적으로 국민들을 등쳐먹으며 농락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현재 한국은 대의정치와 관치(官治)일변도의 대의민주주의통치권력구조만 존재할 뿐 시민정치와 주민자치, 그리고 공론정치 기반의 직접민주주의민치권력구조가 거의 없어 공화정 또한 매우 취약하다. 그리고 더욱더 우려스러운 것은 중앙(수도권)이 지방(지역)을 배제하는 수도권일극 중앙집권체제가 저출산 지역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지금 깨인 한국인들은 현재의 외발민주주의 87년 체제에 대한 불만이 목에 차 있으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우리 안에 갇힌 사자처럼 경로의존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대의민주주의 신화에 세뇌되어 대의정치인들의 팬덤정치의 좋은 먹이감이 되어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상법 개정으로 경제민주화 구체화해야

김영호: 내가 조용한 혁명을 위해서 이번에 야당에게 주문하고 싶은 게 있다. 하나는 제7공화국을 여는 헌법 개정과 아울러 상법을 개정해 달라는 것이다. 상법을 개정하는 데 있어서 아까 말한 기업이 수많은 시민을 포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을 헌법과 상법에 반영해 달라는 것이다. 다수당이 됐으니까 권력의 횡포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은 이런 근본적인 문제, 시민이 배제된 자본주의, 시민이 배제된 민주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기업의 이사가 관료, 검찰 출신들이 많고 이들은 오너에게 충성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주주 이익을 대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상법에 충성을 다할 의무가 주주를 향해야 한다,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회사에 충성하라, 고 돼 있다. 이것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최소한도 주주 이상 이해관계자에게 충성하는 요즘 말로 같으면 'ESG 충성' 이사가 만들어져야 한다.

또 주식의 보유 기간에 비례해서, 장기 투자냐 단기 투기냐에 따라서 의결권의 차등을 주는 차등 의결권을 인정해야 한다. '의결권 더블 보팅' 시스템이라고 해서 프랑스에서는 실시되고 있는데, 장기 투자 자본에 대해선 의결권을 두 배로 준다. 반면 투기자본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한 표만 준다.

상속 증여시에 시가를 기준으로 삼지 말고 순자산 가치를 기준으로 하게 할 필요가 있다. 재벌이 상속 증여하는 경우에 과세 표준을 시가에 두면 주가가 오르는 것을 억누른다. 그러면 주주가 손해를 보게 된다.

그리고 소수 주주 동의제도 도입하고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대주주에게 적용해야 된다. 이런 내용을 갖춘 상법 개정을 87년 체제의 극복의 핵심 내용으로서 의회에서 빨리 입법해야 된다.

사회: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에 대한 일종의 확대 내지 구체화로 볼 수 있겠다. 헌법에는 어떤 식으로 이걸 담아내면 좋을까?

김영호: 헌법에서는 추상적인 수준에서 표현하면 될 것이고, 경제민주화를 기업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하는 강령 정도로 넣으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좀 더 보편적인 이득이 되게끔 한다는 식의 조항이면 될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국의 기업주의에, 한국의 자본주의에 '국민'이 들어가게끔 하자. 헌법 개정을 하게 되면 거기에 넣고 헌법이 개정 안 돼도 현재 법으로 할 수 있는 게 많다. 나는 이런 것을 국회에서 손 보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라고 본다.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서도 제안할 게 있다. 국민연금 관련 논의가 기금 고갈 문제에 초점이 있는데 거기다가 하나 더 보태서 복지 개념을 도입하자. 복지 개념을 도입해서 노인들에게 소득 대체율이 높도록 해주자 그러니까 많이 내고 많이 받도록 해주자 하는 원칙이 핵심인데 나는 그런 복지 개념을 연금에서 도입하는 것보다 아까 말한 대로 기업에서 주식 사는 사람에게 부자가 되게 해 주자는 것이다. 오너에게 가는 것을 주주에게 가도록 해서 주식 환원율을 21%에서 그 두 배로만 올리면은 한국의 주가가 2배 내지 3배가 될 것이다. 그것이 노인들과 젊은이들에게만 오게 하면 그 돈이 상당하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1000조 원을 넘었는데 여기에다 외국 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서 기업들이 사내 유보금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600조다. 둘을 합하면 1600조 원인데, 이 돈이 외국 기업 주식이 아닌 한국의 주식 시장에 들어오면 주가를 지금보다 배로 올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민연금도 이익이 많아져 기금 고갈 시기가 연장된다.

또 이는 한국의 기업에서 소비자들이 배제 되는 현실, 기업 물건을 사 줘서 기업이 잘 돼도 나한테 이익이 되는 게 별로 없는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 나한테 돌아올 연금이 한국 기업에 투자가 됐다 그러면 연금의 배당금이 많도록 이 회사 제품을 내가 사줘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한국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따로인 상황, 외국 브랜드 제품의 천국인 현실도 나아질 수 있다. 한국의 소비자와 기업 간에 새로운 동맹을 만들어주자. 동맹을 다른 나라처럼 이해관계를 두텁게 해줘야 한다.

임진철: 경제민주화와 관련하여 제7공화국에서는 사회적 경제활성화를 위한 ‘협동조합청(협동사회경제부)’ 신설과 재정분권과 관련하여 광역시도지역별 ‘공공은행’과 읍면동단위 ‘마을기금제’ 도입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앞서 극심한 불평등이 해소되고 1:9:90% 헬조선신양반제사회가 지양된 사회상으로서 1:39:60%의 자유안정성 공평사회를 이야기했다. 그러면 ‘1:39:60% 자유안정성 공평사회’를 구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가경제에서 협동조합과 마을기업 등과 같은 사회적 경제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지역단위에서 지역순환경제로 자리잡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경제는 시장경제 시스템과 계획경제 시스템, 그리고 사회적 경제시스템 등으로 구성된 복잡계 경제다. 대략 시장경제 시스템 중심의 사회를 자본주의라 하고, 계획경제 시스템 중심의 사회를 사회주의사회라 부른다.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체제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 시스템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사회적 경제(호혜경제) 시스템과 계획경제 시스템의 비율을 상당 수준으로 높여온 혼합경제체제다. 대표적인 나라들은 오늘날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며 행복지수 높은 북서유럽 노르딕국가들이다.

오늘날 한국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의해 마을공동체와 커먼즈는 갈기갈기 해체되어 각자도생 모래알사회가 되어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건강한 시민사회가 자리잡기 힘들고 민주주의가 취약해진다. 보통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3% 정도 되면 협동조합원들의 소비자파워를 통해서 재벌을 견제할 수 있고, 지역의 공동체와 커먼즈를 복원시키며 지역순환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 한다. 그런데 한국의 사회적 경제 비율은 2~3% 수준에 불과하다. 세계 최저출생율과 최고의 자살률, 그리고 세계 최고의 피케티지수(불평등지수)를 기록하는 헬조선이 될 수밖에 없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회적 경제의 미미한 존재도 주요한 이유일 것이다ㆍ

더불어민주당이 4.10총선에서 압승을 하고 그 어떤 정치제도를 만들어도 사회적 경제비율을 10~15%대로 올려 놓지 않으면 서민대중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고 지역순환경제의 꿈도 무망할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중앙집권 통치체제하에서 지역사회와 미미한 사회적 경제세력의 힘만으로 사회적 경제의 비율을 15%대로 올려놓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 실제적으로 가능하게 위해서는 ‘시민주권의 제3섹터 시민경제’가 필요하다. 이를 가능케 하려면 중소벤처기업을 지원육성하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있듯이, 사회적 경제를 지원 육성하기위한 협동조합청(협동사회경제부) 설립이 필요한 것이다.

설립된 협동조합청과 더불어 지역별 공공은행, 그리고 마을기금의 유기적 융합이 필요하다. 지역공공은행이야말로 피폐화되고 있는 지역경제를 살리고 지방자치단체 재정 수준을 질적으로 확 끌어올려 지자체의 중앙정부에 대한 종속을 완화시켜내며, 이른바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이다. 다음으로는 읍면동 단위 마을기금의 제도화이다. 한국인이 스위스 국민보다 못할 게 없는데 스위스 국민은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잘 살며 행복지수까지 세계 1위권인데, 한국의 젊은이들은 어째서 헬조선에서 산다고 할까,라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 해답은 바로 스위스는 ‘코뮨 자치’와 마을연방공화국이라는 우수한 정치제도, 그리고 제도화된 마을기금과 협동조합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영호: 마지막으로, 나는 다산 정약용이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제'를 '기'(棄, 버리다)로 풀이해야 한다고 해석했다는 것을 상기하고 싶다. 현재 재벌이 기업을 개인 기업화하는 것이나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를 사유화한 것이 큰 죄라고 생각한다. 공공성의 회복이 공공혁명에서 아주 중요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산의 자기이익은 버려라는 '기'라는 해석이 갖는, 당시로서는 물론 지금에도 혁명적인 그 발상을 되새겨야 한다. 다산의 '수신기가'의 정신, 도산 안창호의 '대공주의' 정신이 우리나라에 지금 요구되는 공공의 회복, 기업이나 정부나 국회의 공공성 회복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댓글 0 보기
수정/삭제시 이용합니다.
 65571293
수정삭제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운영자
2021-10-18
0
 
Han
2024-09-06
-1
Han
2024-08-30
-2
Han
2024-08-16
-3
Han
2024-08-09
-4
[1]
Han
2024-08-02
-5
민들레
2024-07-28
-6
Han
2024-07-26
-7
Han
2024-07-19
-8
Han
2024-07-12
-9
민들레
2024-07-07
-10
Han
2024-07-05
-11
제니
2024-07-04
-12
강본
2024-06-30
-13
Han
2024-06-28
-14
제니
2024-06-27
-15
민들레
2024-06-24
-16
Han
2024-06-20
-17
강본두
2024-06-18
-18
Han
2024-06-14
-19
Han
2024-06-07
-20
Han
2024-06-07
-21
강본두
2024-06-05
-22
강본두
2024-05-31
-23
Han
2024-05-30
-24
강본두
2024-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