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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수다 방
전체국빈 방문의 시초 ( 박통의 독일 방문)
BY Erin2022-09-26 18:55:37
(페북에서 퍼온 글입니다) 독일은 그들은 나태(?)하여 결국 광산을 실은 나태한게 아니라 하지만 한국에서 온 광부들이 투입되면서
한편 왜, 간호사가 필요하였느냐? 국민소득이 올라가니 특히 야간에는 일할 간호사가 없었다 특근수당을 많이 준다 하여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한국 간호사들에 대해서는 한국 간호사들은 환자가 사망하면
우연한 기회에 담당 간호사가 자리를 비우든지 아니면 갑자기 간호사가 없을 경우면 주사도 놓고 환자를 다루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한국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의료 분야를 맡기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위급한 사고환자가 피를 흘리면서 만약 피가 모자라 환자가 위급한 지경에 빠지면 그 때부터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하였고, 이런 사실이 서독의 신문과 텔레비전에 연일 보도되면서 서독은 물론 유럽 전체가 "동양에서 천사들이 왔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우리 간호사들의 헌신적 노력이 뉴스화 되자 서독 국민들은 이런 국민들이 사는 나라의 대통령을 특히 도시에 진출한 간호사들의 실력이 독일 간호사들 못지않다는 인정이 일고 있던 시기, 한독협회 '바그너 의장'은 병원에 오면 꼭 한국 간호사만 찾는데 왜 그러느냐고 기자가 물으니 '주사를 아프지 않게 놓는 특별한 기술자'라 하여 주변을 놀라게 하였다는 것이다 서독정부도 그냥 있을 수 없다 하여 이것이 단군 이래 처음으로
한참 국빈 자격없는 우리로서는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가야할 다급한 실정이었다 그래서 모든 준비를 하였으나 한국이 가진 항공기는 일본만을 왕복하는 미국 정부가군사 쿠데타를 한
그래서 연구한 것이 어차피 창피는 당하게 되었는데 한 번 부딪쳐 보자 이래서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었던 최두선 선생이 특사로 서독을 방문하여 <뤼브케>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각하!' 결국 합의 된 것이 홍콩, 방콕, 뉴델리, 카라치, 로마를 거쳐
1964년 12월 6일 내 나이 두 살때 <루프트한자>를 타고 간 박정희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우리 광부들이 일하는 탄광지대 '루르' 지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서독 각지에서 모인 간호사들과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까지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새까만 얼굴을 본 박정희는 목이 메기 시작하더니
광부들과 박정희와 육영수가 한 덩어리가 되어 부둥켜안고 통곡의 바다를 이루었으니 얼마나 감동적 이었을까! 독일 대통령도 울었고 나라 밖에서 광부로써 고생하는데 못먹고 헐벗어 먼 타국가서 고생하는데 이렇게 등 따시고 배가 불러도 눈물이 나는구만... 박정희 방문 후 서독은 제3국의 보증이 없이도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이 받는 월급을
서독에 취업한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이 본국에 송금한
즉 박정희의 외교능력이 미국의 어느 보고서에 의하면 박정희가 없었다면
내 생각도 그렇다 투표 잘 했어야 했는데......
P.S 종로 유세장에서 태극기를 바라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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