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회사를 가지 말아야 했는데...’
‘그때 그 이직 제안을 수락할걸.’
이직 결정을 두고 후회하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당시에는 그 한 번의 결정이 장기적인 커리어 패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떤 변화로 이어져 현재 모습에 이를지 미처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뼈아픈 후회를 한들 이미 한 결정을 물릴 수는 없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좋은 이직일지 나쁜 이직일지 당장은 알 수 없지만, 판단의 기준은 있다. 좋은 이직이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부합하는, 맥락이 있는 이직’이다.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어도 가장 중요하게 추구하는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이직은 후회가 적다. 또 그런 이직만이 맥락의 타당성과 진정성을 만들어준다.
이직의 맥락, 이럴 때 끊긴다
이직의 맥락을 구성하는 요소로는 업황의 변화, 회사의 흥망성쇠, 연봉 인상, 업무 확장, 회사 규모, 개인사 변화에 따른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의 추구 등이 있다. 크고 안정적인 조직의 부장급에서 작은 신생조직의 총괄 임원 자리로 이직했다면, 굳이 이유를 묻지 않아도 이 맥락에 권한, 리더십 경험, 경력 성장 등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지양해야 하는 이직 형태 중 하나는 친한 지인을 따라서 하는 사례다. 본인의 가치관과 지인의 가치관이 다르고 새로운 조직에서 기대하는 역할도 다르다. 이런 이직으로 전체 커리어의 맥락을 잃게 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모 대형 자산운용사 펀드 관리역 과장으로 근무하던 A씨에게는 평소 믿고 따르던 친한 상사 B씨가 있었다. B씨는 투자 전문가로서 신설 회사의 투자 총괄 임원급으로 이직 제안을 받고, 위험요소가 있지만, 본인의 경력 성장을 위해 도전해 보기로 결심한다.
B씨는 “연봉을 올려주겠다” “팀장 자리를 주겠다” “나를 믿고 따라와라” 등의 말로 A씨를 설득하며 이직을 제안했고, A씨는 마음이 움직여 결심했다. 그러다 1년쯤 지난 뒤 B씨가 조직에 실망하고 잘 적응하지 못하여 퇴사했다. 덩그러니 남은 A씨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다시 이직을 알아봐야 했다.
이력서만 봐도 맥락이 보인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이력서를 접하다 보니 빠르게 훑어만 봐도 후보자의 전문성부터 이미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등이 한눈에 파악된다.
가령 이력서를 보고 ‘이 후보는 40대의 증권사 부동산 PF 전문가로서 활황일 때 스카우트 제안이 많아 성장하는 회사로 이직이 몇 번 있었으며, 최근 몇 년간 업황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수익 추구 성향인 것 같다’는 첫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력서를 두 번째로 다시 읽을 때는 시간순으로 이직의 흐름과 맥락을 짚어본다. 당시 업계 상황과 함께 이직의 궤적을 그려보며 스토리텔링을 해본다.
이때 이직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읽히면서 사유에 대해 추가 질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스토리가 무리 없는 이력서가 있는 반면, ‘왜 이직했을까?’ ‘왜 이때 1년 이상의 공백이 있을까?’ ‘이 업종이 호황이었을 시기에 왜 갑자기 업종을 바꾸었을까?’하고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아함의 연속인 이력서도 있다. 소위 맥락이 없는 이력서다. 헤드헌터조차 맥락이 읽히지 않는 이력을 가진 후보는 고객사에 추천 시 그 사유에 대해 설득력과 호소력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맥락 있는 이직의 조건
첫째 우선순위가 명확한 이직이다. 연봉이나 성과급 제도, 복리 후생, 워라밸, 조직 문화, 브랜드 인지도 등 모든 면에서 고루 다 100% 만족하는 이직은 드물다. 적어도 향후 몇 년간 가장 중요한 한두 가지를 크게 충족시켜 준다면 다른 요소는 조금 양보할 수 있다. 자신의 가치관에 맞는 이직 조건의 우선순위를 세우고 이 맥락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길게 보았을 때 경력이 확장되거나 경험이 더해질 수 있는 이직이다. 결정하기 전 이번 이직으로 몇줄이 추가될 미래의 이력서를 머릿속에 한 번 그려보자. 경력이 훨씬 탄탄해지고 경험과 네트워크가 풍부해지면서 전문성이 더욱 강해지는 이력이 될 수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하여 경력 성장의 맥락을 잡자.
셋째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의 맥락이다. 어떤 금융 기관의 후보가 이런 질문을 해왔다.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내가 해왔던 업무를 계속할 수 있는 자리로 이직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제너럴리스트로서 다른 업무도 경험할 수 있는 자리로 이직하는 것이 나을지‘라고 묻는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업계마다, 시기에 따라 그리고 개인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어 정답은 없고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를 극단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맞지 않을 수 있다. 전문성은 꼭 한우물만 판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를 둘러싼 다양한 유관 업무 경험을 두루 하는 것이 더 전문성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고경영자(CEO)들의 면면을 보면 결국 오래 종사한 전문 분야 한두개를 바탕으로 전사 모든 부서를 고루 경험한 인재가 많다. 그래야 전체를 조망하는 안목과 업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유할 수 있다. 즉 두 가지 측면을 다 고려하여 이직의 맥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직 결정 시 멀리 보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당장의 이익보다 멀리 보고 전체 커리어 패스 차원에서 맥락 있는 이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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