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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평판의 문제 - IBK 배구 선수 레베카 라셈 story-
BY 제니2025-05-28 11: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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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판의 문제

. '레베카 라셈'이라는 여자배구선수가 있다. 2021년 IBK기업은행에 6순위로 지명된 아포짓 스파이커. 키가 190이나 되고 할머니가 한국계라는 인연도 있으며 외모도 화제가 되며 배구팬들의 기대를 모았던. 

. 하지만 2021년은 IBK 최악의 시즌이었다. 서남원 감독이 이끄는 팀의 성적은 바닥이었고(사실 애초에 정관장에서 바닥을 찍은 서남원 감독이 다시 IBK에 기용된 것에서부터 나는 경악했지만) 건강악화를 이유로 감독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조송화 세터의 태업과 경기거부, 김사니 감독대행 사태들이 겹쳐지며 스포츠면이 아니라 사회면에까지 이 문제가 다루어질 정도였다. 

 

. 라셈은 애초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그리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해서 기대치가 낮기도 했지만 자신의 장점인 신장을 살리려면 높은 토스, 특히 세터의 백토스가 매우 중요한데 우리나라 여자배구 세터 가운데 백토스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시피하고 더구나 앞서 이야기한 세터의 태업, 급하게 대체자원으로 투입된 김하경의 역량한계까지 겹쳐지며 라셈은 자신의 장점을 전혀 살릴 수 없었다. 

. 외국인 선수의 '해결능력'(좋은 표현은 아니다. 안좋은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점수를 내야한다는 뜻이니)이 중요한 우리나라 리그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캐릭터이긴 하다. 실바, 모마, 디우프, 라자레바처럼 혼자 3-40점은 해줘야 '잘뽑았다'라고 하는 리그이다보니. 본인은 정말 열심히 뛰었지만 결국 시즌중 교체가 되었는데...

 

. 그 과정이 정말 '더러웠다'. 일단 라셈이 다시 포인트를 많이 내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과정이었음에도 감독교체 및 전감독 서남원과의 공개적인 갈등으로 입장이 곤란했던 김사니 감독대행의 '전감독 흔적 지우기' 차원에서 전격적으로 방출이 결정되었고, 심지어 GS칼텍스와의 경기 한 시간 전 코트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 선수에게 방출통보가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듣고 코트 위에서 울음을 터트렸다고 하는데 정말 무례와 무배려의 극치였다. 

 

. 더 황당한 것은 그 상황에서 팀 프런트가 대체 선수 산타나의 코로나 자가격리 기간을 미처 예상하지 못해서 2주 간 네 경기나 외국인 선수 없이 뛰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점. 팀 주장과 감독은 도망가고 프런트는 정신과 예의가 산으로 간 이런 상황에서 어지간한 선수라면 경기 직전 방출통보를 받은 그 시점에 짐을 싸서 공항으로 향해야 했겠지만 라셈은 그 경기 뿐 아니라 산타나가 팀에 들어올 때까지 2주간 네 경기를 모두 뛰었다. 그것도 아주아주 열심히 뛰었다. 경기 중계하는 해설진도, 팬들도 모두 안타깝고 미안해하는 가운데 마지막 경기인 도로공사와의 경기에서는 공을 살리겠다고 부상을 무릅쓰고 광고판으로까지 돌진해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팬들이 말릴 정도. 언론사를 통해 여러 번 인터뷰가 있었고 그때마다 이런 억울한 상황에 대한 질문도 받았지만 라셈은 한번도 리그나 팀, 다른 선수들을 탓하지 않았고 늘 자신이 행복했으며 이 리그가 좋다는 말만 반복했다. 

 

. 결국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팀동료들도 울고 통역도 울고 팬들도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라셈은 떠났다. 사실 성적이 부진해서 심지어 시즌 중에 교체되는 선수에게 이 정도로 애정과 응원을 보낸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 그리고 그녀는 매년 우리나라 여자배구 트라이아웃에 참가했고 매번 탈락했다. 그리스, 미국, 푸에르토리코 등 여러 리그를 떠돌았고 푸에르토리코 리그에서는 5주차 베스트로 선정되는 일도 있었지만 트라이아웃 영상을 통해 냉정하게 보자면 기량이 확연하게 성장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다시 말하지만 토스의 질이 좋을 땐 위력적인데 안좋은 볼을 처리하거나 힘으로 찍어누르는 능력은 역시 부족했다. 

. 하지만 올해 트라이아웃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작년 우승팀인 흥국생명이 라셈을 지명했다. 트라이아웃은 작년 순위가 높을 수록 선발순위가 낮아져서 흥국생명은 마지막인 7순위로 선수를 뽑았으니 달리 뽑을만한 선수가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예상으로는 라셈보다 기량이 나아보이는 선수가 적어도 서너명은 있었다고 한다. 

 

. 흥국생명의 결정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은퇴 레전드로 이제는 지도자의 코스를 밟을 것으로 보이는 김연경의 의견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흥국생명의 신임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도 강하게 동의했다고. 무엇이 그들의 생각을 움직였을까? 그건 라셈이 보여준, 남기고 간 '태도'와 그를 통해 쌓인 '평판'(reputation)이 아니었을까 한다. 1차적으로 그건 팬들을 끌어들이는 직접 환산 가능한 '인기'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는 일, 특히 팀웍이 중요한 배구 경기에서 그 사람이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떤 관계를 맺는가 하는 점은 그저 공을 강하게 때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 민주주의가 '제도'를 통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이모저모 따져보면 민주주의는 절대로 법과 제도만으로는 작동하기 힘든 시스템이다. 나는(이 역시 '정의의 감각'에서 다루어보려고 하는 주제이지만) 민주주의에서 아주 중요한 기제는 '평판'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평판을 형성하는가, 사람들이 그 평판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가 실제로 법과 제도의 헛점을 통해 그걸 악용하고 이득을 취하려는 못된 시도를 막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 어제 오늘 타임라인을 달구는 모 대선후보의 쓰레기같은 말은 그래서 그의 '평판'으로 이어져 강한 '민주적 제재'를 받아야한다고 본다. 그런 사람들이 크게 실패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절대로 얻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그 사회에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 그리고 그 반대의 의미에서,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환호를 이끌어낸 라셈의 복귀가 흥국생명의 조직력과 상승효과를 일으켜 성공스토리로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그래서 다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더 예의있고 책임감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다행히 올해 흥국에 이적한 이고은 선수는 그런 액티브한 토스를 해줄 능력이 있으니 합이 잘 맞을 수도 있겠다. 나도 라셈 덕분에 GS에 이어 흥국의 팬이 될 것 같다. 이번 시즌이 기대된다.

- 곽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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