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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코너전쟁하는 나라의 피폐한 국민의 삶
BY 민들레2024-07-28 23: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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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럽에 휴가를 다녀왔다. 포르투갈에서 숙소에 체크인 하고 배정을 받은 방에 들어가 보니 바로 옆방 베란다에서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러시아말이었다. 머나먼 포르투갈에서 바로 옆방 투숙객이 같은 러시아 사람이라는 것을 신기해 하면서 의도치 않게 통화 내용을 들게 되었다. 엿듣고 싶지 않아서 집중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통화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크고, 구조상 열려 있는 베란다가 내 방 베란다 바로 옆이라서 내용을 대충이라도 듣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러시아에 남아 계신 부모님에게 포르투갈에서 난민 신청한 이야기, 이런저런 적응하는 이야기 등이었다. 그날 밤 옆방 남자를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만났다. 같은 러시아 사람이라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숙소 뒤에 있는 아늑한 정원에 앉아 음료수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포르투갈 여행 중 만난 모국 러시아 망명객

니콜라이 (가명)는 러시아에서 공무원이었다고 했다. 100만 명 넘는 대도시에 살면서 한국으로 치면 구청과 같은 정부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러시아 공무원은 월급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지만 아내와 같이 맞벌이 하면서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몇년 전에 은행 대출을 받이 집을 샀다. 2020년에 코로나로 인해 아내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도 끝나가는 시점에 유럽 휴가도 갔다 오고 새 차도 사고 인생이 좋아지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와  2세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2월에 이 모든 게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에 니콜라이 가족이 분열했다. 푸틴의 열렬한 지지자인 아내의 부모님은 전쟁을 전적으로 지지했고, 전쟁 반대인 자기 딸 부부와 매일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니콜라이의 직장도 전쟁터로 변했다. 모든 직원들이 전쟁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매일 싸우고 서로 욕하고 이견 때문에 물리적 폭력사태까지 빚어졌다.  거기에다가 공무원을 향한 정부의 압박이 배로 증가했다. 사무실에 전쟁을 찬성하는 ‘Z’ 사인을 무조건 배치해야 했고 자기 개인 sns에서도 ‘Z’ 를 사용해야 했다. 정부는 2022년 봄 전쟁 지지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전쟁터에서 싸우는 병사들을 돕기 위해 모든 공무원 월급에서 매월 일정한 금액을 공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월급은 대략 4% 줄었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자 아이 낳을 계획이 깨끗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일상마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친정과 모든 연락이 끊겼음은 물론 전쟁을 지지하는 이웃들과  친구들 간 소통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폐쇄된 국경 때문에 해외 휴가는 꿈이 되었고 상승하는 물가로 가정 예산이 타격을 받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2년 9월 또 하나의 불행이 닥쳐 왔다. 국가에서 동원령이 내려진 것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드론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빌라 체르크바 지역의 공장이 화염에 휩싸여 있다.

[우크라이나 경찰 사진 제공]. 2024.01.30. 로이터 연합뉴스

 


전쟁으로 일상이 산산조각난 가운데 내려진 국가 동원령 

니콜라이는 30대 중반 남성으로 동원령 대상이었지만 공무원들은 처음에 동원령 대상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1차 동원을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마음이 상당히 불안했다. 그때 같은 연령대 남성들이 대거 러시아를 이탈하는 뉴스를 계속 보면서 조마조마했다. 전쟁 반대론자라는 정치적 입장과 전쟁터에 나가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도 이민 여부를 두고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해외여행을 다니기는 했지만 해외에서 장기간 살아 본 적도 없고 외국어도 모르며 자기가 가진 자격으로 해외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지도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러시아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지기만 했다. 주변에서 빗발치듯 사망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죽마고우 친구가 동원으로 전쟁에 끌려가서 우크라이나에서 죽었다는 소식에 이어 바로 옆집 아줌마의 아들, 직장 동료의 남동생, 아내의 친구의 오빠 등등, 아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부에서 이런 죽음을 정당화 하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러시아 국민이면 당연히 죽어야 하고, 우크라이나는 나라도 아니며, 우크라이나에 사는 사람들은 사람도 아니다. 그들은 죽어 마땅한 놈들이다. 러시아 문화에는 타인을 죽이는 전통이 있다. 러시아는 전 세계와 싸우고 있고, 필요하면 전 세계를 핵으로 파괴시킬 날이 꼭 올 거라는 등,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24시간 내내 방송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잡아 감옥에 집어넣는 것도 거의 매일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자기는 sns도 별로 안 하고 반정부 활동도 안 하는 평범한 시민이라 설마 자기에게까지 이런 정부의 탄압이 가해지지는 않겠지 간절히 바라기만 했다. 이런 환경에서 더 이상 정신적으로 버티기가 어려웠다. 

국민이 죽고 탈출하고, 텅 빈 나라에 미래 있겠나

그러나 이민을 가야 한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사건이 2023년 초 발생했다. 니콜라이 부모님 집으로 니콜라이에 대한  전쟁 동원 통지서가 날라 온 것이었다. 애초부터 공무원 같은 일부 특수 직업을 가진 국민들을 동원령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정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은 아니지만 통지서를 본 순간 정부의 거짓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니콜라이는 그 순간에 러시아를 떠나야 한다는 결정을 아내와 함께 내렸다고 나에게 토로했다. 

바로 다음 날 사표를 냈다. 처음에는 러시아 국민들이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조지아에 가서 한동안 헤맸지만 결국 2023년 말쯤 포르투갈에 있는 한 회사에서 오퍼를 받아 포르투갈로 건너와 바로 난민 신청을 했다. 현재는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묵묵히 앉아 그의 말을 들었다. 그의 간절함과 순수함에 마음이 짠했다. 내가 뭐라도 그를 도와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너무 답답했다. 니콜라이 같은 스토리는 현재 러시아에서 수십만 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건 우크라이나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돈 벌고 아이를 키우며 일상을 평범하게 살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인들의 건력욕과 국제정치의 냉혹함 속에서 왜 고통을 견뎌야 하고, 죽어야 하고,  자기 집을 떠나야 하고, 자기 친구와 친척을 왜 잃어야 하는지… 

여러 러시아 독립기관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이후에 러시아를 떠난 사람들은 대략 12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정확한 숫자를 알 길이 없지만 실제 숫자는 이보다 더 클 수도 있다는 평가도 있다. 물론 사람들의 스토리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정치적 입장 차이 때문에 자발적으로 이민을 선택한 이도 있고 정부 압박으로 강제 이민을 한 이도 있을 것이며 니콜라이 처럼 복합적인 이유로 이민 길에 오른 이도 있을 것이다. 이유가 뭐든  자기가 낳고 살아온 본국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타지에서 새 삶을 시작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러시아 주변 국가 입국 현황자료, EU(유럽연합) 난민 신청 상황자료, 미국 이민국 보도자료 등으로 입증된 것만 70만 건에 달한다. 이렇게 대거 국민이 이탈하는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나는 러시아 사람이니 러시아 걱정이 태산이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이라고 우크라이나 걱정을 안 할까?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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