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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수다 방
전체주일 예배를 끝내고......
BY 상진2022-05-17 13:5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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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를 끝내고 몇몇 교우들과 밥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때론 수다를 위한 수다로 끝나기도 하지만 가끔은 마음 속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오곤 한다. 한 분이 지나온 인생을 이야기 하며 아픔을 통해 스스로 더 깊어졌다는 고백을 했다.

공감하는 마음으로 담담히 내가 말했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경험 한 후에야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어쩜 그리 자기 마음을 잘 표현했나고

그 분이 맞장구를 치셨다. 내가 생각해도 초큼 멋있는 말이긴 했지만, 사실은 지난 인생에서 우러 나온 고백이었다.

 

'뜻을 품고 사는 인생', '뜻을 이루어 가는 인생'.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 온 것 같다. 청년 시절, 뭔 개똥철학도 아닌 뜻을 품었었는데,

이십대는 좌충우돌 많은 경험을 하고, 삼십대는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그 길을 준비하고, 사십대는 본격적으로 품은 뜻을 펼치고,

오십대부터는 열매 맺는 인생을 살아 보리라 마음 먹었다.

 

그에 따라 이십대는 운동권에 속해 좌충우돌하며 살았고, 삼십대는 (신학)공부를 다시 시작해 공부와 목회를 병행했고,

사십대에 목사가 되어 본격적으로 뜻을 펼치는 길에 나섰다. 내가 품은 뜻은 교회개혁과 건강한 교회 만들기였다.

주중에는 기독시민운동단체에서 일하며 교회개혁 운동을 진행했고, 주말에는 건강한 교회를 이루고자 교회 일을 했다.

 

그 절정이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의 뜻을 품고 카페를 열고 운영하던 2014년 무렵이다. 시민단체, 교회, 카페에서 주 평균

80시간 가까이 쓰리잡을 뛰며 뜻을 펼치기 위해 애 썼다. 나름 가상한 시도였지만 어쨌든 결과는 실패로 끝이 났다.

그리고 모든 일에서 손을 땠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때 정신 차렸어야 했는데.

그 후, 갑작스런 결정으로 아내와 함께 자영업을 시작했다. 그 때는 자영업과 목회를 병행하는 (신학교에서 맨날 이야기 하던)

이중직을 해 보려고 했다. 먹고사니즘으로 목회에 연연하지 않는, 자비량으로 목회하는 목사. 뭔가 폼나지 않는가.

 

하지만 자영업의 현실은 냉혹하고 힘겨웠다. 초보 자영업자가 겪는 온갖 시련을 겪다보니 이중직은 커녕 교회 일 자체를 그만

두게 되었다. 최악의 순간에는 지옥의 현실이 있다면 이렇겠구나 느끼며 살기도 했다. 그래도 나름 목사였는데 스스로 보기에

너무 한심했다. 에고가 강할수록 무너지는 시간도 길어지는 법. 2년 가까운 세월, 인생의 실패와 추락, 포기와 침잠의 시간을 보냈다.

교회개혁이니 이중직이니 하는 ‘뜻’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인정욕구도 철저히 무너졌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배운 시간이었다.

 

세월은 흘러 자영업자로 산지 6년이 지났다. 어릴 적에 계획했던, 뜻을 품고 일하여 열매를 맺고자 했던 오십 줄에 들어 섰다.

열매는 커녕 이룬 거 별로 없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어 있다. (헐!) 다행인 것은 실패라는 경험 자체와 살기 위해 몰두했던

사막영성을 통해 인생이 더 깊어졌다는 사실이다. 리처드 로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공과 성취를 위해 살던 인생 전반기를

끝내고 실패와 추락의 관문을 거쳐 성숙과 위로 올라감의 인생 후반기를 살고 있는 느낌이다.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인생을 통해서 ‘위쪽으로 떨어지는’ 은총이 무언지 알게 된 것도 같다. 감사 할 뿐이다.

 

어쩌다 보니 뜻 하지도 않은, 하지 않을 줄 알았던 교회 일을 다시 하고 있다. 지금 속한 교회가 보수적인 목사들에게는,

전도사가 담임으로 있는 ‘이단같은 이상한 교회’ 취급받기는 하지만 어쨌든 교회에서 목사라 불리며 설교도 하고 주차

안내도 하며 전천후로 일한다.

예전과 같은 교회 일을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건강한 교회’를 이루겠다는 뜻 같은 게 없다. ‘미셔널 처치’가

어쩌구 하던 시절의 기억은 다 사라졌다. 그저 필요한 이에게 지친 삶의 위로가 되어 주고 신앙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별 뜻이 없어 그런지 교회 일이 뜻대로 이루어 지지 않아도 불편하지가 않다. 지금은 교회 운영에 관여하고 있는데, 교회도

사람 모인 곳이니 이런 저런 의견차이와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주로 내 뜻을 주장하고 관철시키는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원하는 대로 안 되도 그저 받아 들인다. 인간 참 많이 변하긴 했다.

 

목사 일을 다시 하고 있지만 목사라는 자의식도 별로 없다. 교회에서 목사라 부르니 그려려니 하며, 교인을 돕는 봉사의

일을 감당 할 뿐이다. 목사건 아니건 내게는 별로 중요치 않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 그 믿음 하나로 충분하다.

담임 목회를 하지 않는, 파트타임 목사니 뭔 소릴 못하겠나 싶기도 하다. (페친이신 목사님들께 송구한 마음이다.)

그저 뜻 한바대로 풀리지 않았던 인생을 통해 배운 것을 나누는 간증 아닌 간증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쉽지는 않지만 살아 볼 만 하다.

그건 목사도 마찬가지… 아니, 목사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험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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